프로 6개팀 맡아 6번 경질 … ‘야신 김성근’ 왜 가는 곳마다 잘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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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프로야구 SK 와이번스가 김성근(69) 감독을 해임한 18일 밤. 전화기를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또 잘렸다. 괜찮다. 며칠 쉬어야겠다.” 그는 김성근답게 싸우다가 김성근답게 물러났다. 경기장에서는 이겼지만, 내부(구단) 갈등 끝에 또 지고 말았다. 김 전 감독은 해임될 것을 예상하고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떠났다.


 김 전 감독은 2006년 말 SK에 부임한 뒤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명장이다. 올해도 3위 자리를 지키며 선두를 추격하던 중이었다. 야구 팬들로부터 ‘야신(野神·야구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프로 팀에서만 여섯 번째 해고(또는 재계약 실패)를 당했다. 이번에도 구단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김 전 감독은 오늘의 승리, 올해의 우승만을 위해 뛴다. 그는 “승자가 되고 싶다. ‘비판받지 않는 패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기기 위해 세밀하고 독한 야구를 했다. 또 구단에 많은 훈련비와 코치·선수 보강을 요구했다. 승리한 뒤에도 그는 다음 승리만을 욕심 냈다.

 반면 신영철 SK 사장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테인먼트’를 꿈꿨다. 신 사장은 5년 전 민경삼 단장과 함께 김성근 전 감독을 영입한 인물이다. 그러나 우승을 자주 해도 그룹 이미지가 좋아지지는 않는 현실, “SK야구는 재미없다”는 지적에 고민했다. 신 사장은 “김성근 감독은 훌륭한 리더다. 그러나 몇 년 후를 고민해야 하는 구단 사장과는 입장이 달랐다”고 말했다.

 2000년 창단 후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하던 SK는 김 전 감독 부임 후 최강 팀으로 변모했다. 뛰어난 선수는 없지만 김 전 감독의 치밀하고 탁월한 전략으로 삼성·두산 등 스타군단을 꺾었다. 신 사장은 지난 6월 그룹 고위층으로부터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신 사장과 김 전 감독은 이후 몇 차례 만났지만 대화가 진전되지 않았다. 신 사장은 “급할 것 없으니 시즌 뒤 얘기하자”고 미뤘다. 이 과정에서 신 사장은 “재계약을 하려면 (차기 감독 후보인) 이만수 2군 감독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김 전 감독은 불쾌함을 참지 못했다. 결국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올 시즌을 끝으로 SK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가까운 후배들이 “절대로 그만두시면 안 된다. 그건 그들(김 감독에 대해 부정적인 구단 내 사람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라고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SK의 한 여성 팬이 18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경기 종료 뒤 김성근 감독 경질에 항의하며 마운드에 절을 하고 있는 모습. [인천=이호형 기자]

 SK 구단은 하루 만에 해고로 되받아쳤다. 신 사장은 “구단에서 계속 만류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끝내 사퇴를 선언했다. 팀을 추스르기 위해 감독을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갈등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소통하며 풀어낼 수 있었다. 감독이 외부에 한 말들에 대해 구단이 반박할 수 있었겠는가.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팀은 늘 김성근을 찾았다. 덕분에 그는 1984년 OB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89~90년), 삼성(91~92년), 쌍방울(96~99년), LG(2002년) 등 여러 팀으로부터 고용됐고, 또 해고됐다.

 특히 2002년은 그에게 상징적인 시즌이었다. 2001년 6위에 그친 LG를 맡아 4강으로 이끌었고, 포스트시즌에서 현대와 KIA를 잇따라 격파했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4패로 지긴 했지만 최강 팀 삼성과 대등하게 싸우며 야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LG는 “‘신바람 야구’를 추구하는 LG와 김성근 감독이 맞지 않는다”며 그를 해임했다.

 4년 후 SK 감독이 되고나서 그는 주위로부터 “조금만 양보해라” “구단과 잘 지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그러나 김 전 감독은 “유니폼 입은 사람을 깔보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구단만 날 해임할 수 있나. 나도 구단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즌 중 사퇴를 표했고, 구단과 공개적으로 공방을 벌였으니 다른 구단이 그를 데려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수없이 잘려본 김성근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는 또 그렇게 했다. 비판이 아니라 패배가 두려워서일 것이다.

글=김식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야신(野神)=김성근 감독의 별명으로 ‘야구의 신’의 줄임말. 2002년 삼성-LG의 한국시리즈에서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이 4승2패로 우승한 뒤 김성근 당시 LG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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