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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기 아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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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얼마 전 트위터에서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기 아깝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랍니다. 그답지요? 젊음의 소중함을 모르고 젊음을 낭비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따끔한 경고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도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뭔가 느꼈을 땐 이미 젊음이 저만치 멀어진 뒤일 공산이 크지요. 그래서 옛 시인 도연명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하루에 아침을 두 번 맞지 못한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다시 오지 않기에 더 귀하고, 있을 땐 보이지 않기에 더 속절없는 게 젊음입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신이 내린 축복이지만 홀로 빛을 발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와 동행할 때만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조선 전기의 명신 김정(金淨)이 말해줍니다.

 김정은 중종 때 장원급제하고 대사헌, 형조판서를 지낸 인물입니다. 조광조와 함께 사회개혁을 추진하다가 뜻을 못 이루고 기묘사화 때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끝내 사약을 받고 맙니다. 불과 서른네 살 때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노모를 잘 봉양하라고 당부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그러고는 술을 가져오라 해서 실컷 마신 뒤 시를 한 수 읊습니다.

 ‘절도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매/ 사랑하는 어머니 버리고 천륜을 끊었도다/ 이런 세상 만나 내 몸을 죽이니/ 구름을 타고 천제의 궁궐 지나/ 굴원을 좇아 높이 소요하려는데/ 어둡고 긴긴 밤은 언제 새려나/ 사무치는 붉은 마음 풀숲에 묻히었네/ 당당한 큰 뜻 중도에 꺾이었으니/ 천추만세에 응당 나를 슬퍼하리라’.

 기개가 넘치지 않습니까? 이익 좇아 잔머리나 굴리고 책임 피해 핑계거리나 찾는 요즘 위정자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대과에 합격하기 두 해 전인 스무 살에 열한 가지 잠언을 짓습니다. 말과 행실, 뜻, 용기, 생각, 쾌락, 근심, 욕망, 외모, 분노, 호오(好惡)에 대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이지요. 그 『십일잠(十一箴)』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었을 때 앞날이 먼 것을 믿고 일생을 향락으로 지내다가 늘그막에 이르러 그 이룩한 바 없음을 뉘우치는 것은, 마치 달아나는 뱀이 구멍에 들어갔으나 꼬리를 감추지 못해 잡히고 마는 것처럼 한탄해도 늦고 말 것이다.”

 섬뜩한 얘깁니다. 스무 살짜리의 생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요. 하지만 범상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앞날이 먼 줄만 알다가 꼬리를 들리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고 말지요. 그래서 김정은 ‘일락잠(逸樂箴)’에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한창때에 힘쓰지 않으면 썩은 풀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하루살이가 아침저녁으로 들끓지마는 세찬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자취도 보이지 않는다.”

 젊음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갈고닦음이 없이 내세우는 아름다움은 하루살이 허세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치장하고 꾸며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칠보(七寶)로 장식한 옷을 입었어도 똥통에 누워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코를 막고 피할 것이다. <행잠(行箴)>” 외모보다는 내면을 채우는 데 애써야 합니다. 아름다운 입에서 나오는 멍청한 소리만큼 깨는 것도 없는 거지요. “경솔하고 부박한 무리가 덕(德)에 들어가기를 구하는 것은 바다를 건너는데 가마를 타고, 날개를 바라면서 양을 기르는 것과 같다. <의용잠(儀容箴)>”

 내면을 채우는 데 지름길은 없습니다. 스펙 학원도 없습니다. 벽돌 쌓듯 차근차근 다져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서두르고 잔꾀를 부리다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넘어지고 후회해 봐야 또한 소용이 없습니다. “명예에는 바라지 않아도 비방이 절로 따르고, 이익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다툼질이 미치는 법이며, 부유함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원망이 좇아오게 마련이다. 욕망이라는 것은 불이 처음 일어날 때와 같다. 시초에는 기세가 작으므로 사람들이 구경하며 쉽게 여기나 불꽃이 튀게 되면 두들겨도 꺼지지 않아 호수의 물결을 기울여도 쉽게 끌 수 없게 된다. <욕잠(欲箴)>”

 대신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외풍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은 헐뜯어도 성내지 않고 공격받아도 놀라지 않으며 욕해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義)를 행함에 용감하므로 분하고 노여운 일들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용잠(勇箴)>”

 열한 가지 모두는 아니더라도 이 몇 가지는 가슴에 새겨 보십시오. 그것들과 동행함으로써 아름다운 젊음을 마음껏 빛내 보십시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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