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가 돈 굴린 칼라일 ‘비밀 장부’ 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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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타인

미국 거대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은 “공동 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62)이 월가 투자은행가들과 잇따라 만나 공모가격을 얼마로 할지 의논했다”며 “이르면 이달 안에 주식공모 신청서를 증권감독 당국에 제출할 것”이라고 17일(현지시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루벤스타인이 칼라일의 분산 투자 전략을 강조하면서 ‘우리 회사의 가치는 사모펀드가 아니라 일반 자산운용사와 비슷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는 경쟁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전철을 피하기 위한 주장으로 풀이됐다. 블랙스톤은 2007년 IPO를 단행했다. 하지만 자산 구조가 위험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일반 자산운용사보다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 자산 규모를 보면 칼라일은 사모펀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칼라일이 운용하는 돈은 올 6월 말 현재 1530억 달러(약 162조원) 정도다. 한국 국민연금의 절반만 하다. 또 세계 최대 자산운용그룹인 블랙록의 덩치와도 비슷하다.

 그런데 월가 투자은행가들의 관심은 딴 데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이날 전했다. “칼라일의 가치보다는 투자 대상 기업과 상세 수익률 등 내부 비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는 칼라일이 공모 서류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면 공개될 수밖에 없다. 1987년 설립 이후 24년 동안 닫혀 있는 비밀 화원의 문이 마침내 열리는 셈이다.

칼라일은 비밀주의 때문에 음모론에 시달렸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조지 부시 가문의 연계설을 제기했다. 그는 “칼라일이 빈 라덴과 부시 패밀리의 자금을 운용했다”며 “9·11 테러가 발생하자 칼라일이 빈라덴 가문의 자금을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칼라일 쪽은 처음엔 침묵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무어의 주장이 사실로 인정될 조짐을 보이자 2003년 일부 사실을 공개했다. 루벤스타인은 “빈 라덴의 이복동생인 샤피그 빈 라덴이 일부 자금을 우리에게 맡기기는 했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가 칼라일 고문으로 위촉된 적도 있었다.

 칼라일이 IPO에 성공하면 새로운 억만장자들이 탄생한다. 공동 창업자인 루벤스타인, 윌리엄 콘웨이, 대니얼 다니엘로의 지분 가치가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세 사람의 지분 가치는 20억 달러씩은 족히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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