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쓸쓸한 종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결승 3국>
○·허영호 8단 ●·구리 9단

제10보(96~108)=흑▲에 96으로 받아야 했으니 허망감이 두 배다. 그러나 허영호 8단에게 왜 흑▲에 씌워 선공을 가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더욱 허망한 일이다. 흑▲ 자리가 공격의 급소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것.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느꼈기에 허영호는 수순을 비틀었다. 결과는 실패로 마감됐지만 굳이 죄를 따진다면 ‘나쁜 형세’가 죄인일 것이다.

 97로 빵 때려낸 것은 두터운 수이고 노련한 수법이다. 이 대마는 살아 있다. 그러나 생사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참고도’ 백1로 빠져 잡으러 가는 수가 있다. 물론 흑은 2와 4의 선수를 거친 뒤 6으로 잡으면 산다. 하나 하변 싸움이 번져 중앙의 상황이 바뀌면 3은 4로 끊을 수 있다. 그 외 잡다한 맛이 있다. 97은 그걸 시원하게 정리한 수이고 하변을 엄호한 수이기도 하다.

 구리가 “이겼습니다”라고 선언하자 허영호는 좀 더 거칠어졌다. 98과 100, 102 등은 좌충우돌의 하수 다루기 수법으로 구리의 자존심을 긁고 있다. 그러나 도발에 약하고 후반에 약해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 소리를 듣는 구리도 이날은 냉정하게 잘 참고 있다. 반항을 잊은 것 같은 이 자세에 허영호는 더욱 강경해진다. 104로 뿌리를 캐내며 대마 전면 공격에 나선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