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몇 배로 늘 것” vs “밥 갖고 야박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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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인근 래미안아트힐 아파트. 지긋지긋한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최악의 산사태를 겪은 주민들은 비만 보면 얼굴이 굳어지는 듯했다. 쓸려 내려온 나무와 진흙더미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건물 외벽 군데군데 말라붙은 흙 자국만이 그날을 증언할 뿐이었다. 이곳에도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급식비) 5만원 아끼는 거 지금이야 좋죠. 하지만 앞으로 걷어갈 세금이 몇 배는 될 걸요. (무상급식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주민 정영미(47·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었다는 그는 “부자들한테까지 공짜 밥 줄 필요가 있느냐는 오세훈 서울시장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수방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오 시장에 대한 성토가 빗발칠 걸로 예상됐던 아파트 단지는 차분했다. 오히려 오 시장 쪽으로 기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의 표심과 비슷했다. 당시 강남·서초·송파 3구에서만 오 시장이 민주당 한명숙 후보보다 12만6930표를 더 얻었다.

 이곳 주민들은 ‘세금 폭탄 가능성’에 예민했다. 진보진영의 무상 시리즈가 ‘부자 주머니 털기’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안영환(64)씨는 “한마디로 세금 더 걷어가겠다는 거 아니냐”며 “무상급식 절반만 하자는 ‘오세훈 안’도 과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동대문 신평화시장 신발도매상가.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시장 상인 4명이 모여 투표 얘길 나누고 있었다.

“요즘 애들, 저희끼리 ‘아파트 평수가 얼마야’ 한다잖아. 공짜 밥 먹는 거 눈치로 다 안다니까.” “배 고파 보지 못한 사람은 비참한 심정을 몰라.” “잘 사는 집 자식이 몇 명이나 된다고 없는 집 자식들 마음에 상처를 내려고 해?”

 시장에서 양산판매업을 하는 박용란(69)씨는 “아무래도 시장엔 서민들이 많이 사니까 ‘밥 갖고 야박하게 굴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라고 말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어떤 직업이냐에 따라 서울 민심은 달랐다.

양원보 기자, 김혜성(고려대 영문학과), 양정숙(서울대 소비자학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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