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안전이 복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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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2020년 10월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일지가 공개되었다. “(하늘이 뚫린 것과 같은) 10월 쇼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같았다. 왜 허리케인 시즌이 유엔 총회와 맞물렸단 말인가. 전 세계 국가지도자들 절반이 뉴욕에 와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항공모함을 동원해야 했다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예측한 2020년도의 국가안보에 대한 정보보고다. 국가정보위원회는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정보의 제국을 구축하고 있는,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의 세계 최고 정보분석기구다. 위에 인용한 국가정보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뉴욕 월스트리트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가능성에 대한 경고다. 가상의 타격은 9·11테러 때보다 더 심각해, 증권거래소를 뉴욕에 계속 둘 것인가부터 의문시된다고 지적하면서 정책 담당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2011년 7월 대한민국이 물폭탄 세례를 받았다. 성난 자연 앞에 대한민국은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빗줄기가 약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물난리 피해는 2011년 3월 일본 열도를 덮친 쓰나미 같다.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는 없었지만, 자연재해로 수도(首都) 서울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1년 7월 22일에는 노르웨이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86명을 살상하며 전 세계에 테러의 공포를 확산시켰다. 그는 공리주의 철학가인 존 스튜어트 밀의 “신념을 가진 1명은 이익을 좇는 10만 명과 맞먹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다문화정책을 비판하고 이슬람 혐오증을 테러로 표출했다. 그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자생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된, 소위 ‘외로운 늑대(lone wolf)’다.

 서울 물폭탄과 외로운 늑대. 동떨어진 듯한 두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 새롭게 국가안보의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한 ‘초국가적 안보 위협’이다. 냉전시대에는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국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가장 커다란 국가안보 위협 요소였다. 그에 대한 대처가 국가안보의 중추였다. 그러나 냉전 이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는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런 다원화된 국가안보 쟁점에 대한 이해는 국가지도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격요건이다. 이념이나 정치적 의견으로 포장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성과 통찰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난제다. 2020년 미국 대통령이 통탄해 마지않는 것처럼 신종 전염병이나 물·식량·에너지 문제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해 대책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면 무상급식처럼 국민 개개인에 대한 일회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복지가 아니라 치산(治山)과 치수(治水)처럼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들 국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안전한 국가에서 실질적으로 국민복지(國民福祉)를 확보하는, 국가복지(國家福祉)의 중요성을 국민과 국가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한희원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