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꼭 사야 할 안전자산” … 원화 채권에 글로벌 자금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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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아시아 통화와 채권이 강세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시아 통화와 채권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다. 11일 달러당 위안화 가치는 6.39위안을 기록했다. 1993년 말 이후 최고다. 엔화 강세도 이어지고 있다. 원화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 채권 투자 비중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험이 부각된 지난달 12일 이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6조원 이상 팔아 치우는 동안 원화 채권은 4조8000억원이나 순매수했다. 하루 동안 1조2000억원을 매도했던 9일에도 채권은 2000억원 이상 사들였다. 11일 순매도로 돌아서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매수 기조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아시아 채권 가운데서도 특히 원화 채권은 꼭 편입해야 하는 전략적 통화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부증권 신동준 채권투자전략본부장은 “미국과 유럽의 디폴트 리스크 부각을 계기로 국가 신용등급의 하향 가능성이 작고 저평가돼 있는 원화 채권이 안전자산으로 격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향후 2년간 초저금리 유지 방침을 밝힘에 따라 글로벌 자금이 아시아 신흥국으로 유입되면서 아시아 통화는 강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외국인들은 특히 채권 투자 비중도 크게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원화 채권 매수 속도는 매우 가파른 편이다.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은 현재 82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비중은 2006년 말 0.59%에서 2011년 7월 말 7.96%로 급증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아시아 통화와 채권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재정 불안에 따른 국가 신용등급 하향과 통화 약세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지역은 아시아와 북유럽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유럽 중 국채시장 규모가 가장 큰 스웨덴도 원화 채권 시장 규모의 28%에 불과하다. 글로벌 채권포트폴리오 투자를 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원화 채권은 반드시 편입해야 할 전략통화가 된 셈이다.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서 10일 순매도로 돌아서자 일부에서는 이들이 채권시장에서마저 발을 빼는 것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채권 전문가들은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날 외국인들이 판 국채는 주로 단기물이기 때문이다. 전날 채권 값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일 뿐 시장에서 발을 빼기 위한 수순은 아니라는 것이다. SK증권 염상훈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의 매수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외국인이 유동성이 떨어지는 국고 10년물 비중을 크게 늘린 데 주목하고 있다. 국고 10년물의 외국인 순매수 비중은 상반기 1.3%에서 7월 이후 30.2%로 급증했다. 10년물은 급작스러운 경제위기가 닥쳐도 팔기 쉽지 않은 채권이다. 단기 환차익을 노린 민간 자금이라기보다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만기까지 보유하려는 투자자금 성격이라고 보는 이유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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