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름값 장부 좀 봅시다” 업계 “영업기밀 내놓으라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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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기름 거래 내역 좀 주시죠.”

 지난달 말 국내 A 정유사에 이런 전화가 걸려 왔다.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로부터였다. 전화를 받은 A사 직원은 머뭇거렸다. 영업 기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경부 담당자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상 정부가 필요하면 회계 장부를 요청할 수 있다”며 근거를 들이댔다. A사 관계자는 “결국 거래 내역이 담긴 파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로부터 대리점·주유소와의 거래 내역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주유소·대리점·기타 거래처에 공급한 기름값이 날짜별로 적혀 있는 자료다. 정부가 정유사로부터 이런 정보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가 정유사에 자료 제출하라고 한 것은 기름값 논란의 책임이 정유사와 주유소 중 어느 쪽에 있는지 가려내려는 목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달 중순께 기름값이 비싼 전국 500여 곳의 주유소들로부터 장부를 확보해 들여다보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주유소 장부와 비교할 정유사 측의 자료가 필요해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요구에 자료는 제출했지만 정유업계는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대리점·주유소와의 거래 내역은 정유사가 어느 주유소를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영업기밀”이라며 “이런 자료까지 내놓으란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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