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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농로 폐쇄 미루는 새 외부 단체 들어와 사태 악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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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이 약 2000명쯤 되는 평범한 어촌이던 이곳엔 요즘 살벌한 긴장감이 감돈다. 해군이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2014년까지 건설하려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웬 말이냐”며 육지에서 몰려온 진보 성향 재야·시민단체 회원들이 해변에 텐트를 치고 시위 중이다. 48만㎡ 규모인 수용토지에 대한 보상은 이미 다 끝났다. 땅 주인 169명에게 약 600억원이 지급됐다. 일부는 처음부터 찾아갔고 반대하던 30여 명도 결국은 공탁금을 모두 수령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찬성·반대로 갈려 있다. 육지에서 시위대가 온 뒤엔 반대파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7월 28일 오후 5시쯤, 취재팀은 현장인 구럼비 해변을 찾아갔다. 구럼비는 바위에 돌을 굴려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란 뜻이다.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났다. “여기 왜 왔어, 가란 말이야.” 낯이 익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문정현 신부였다. 문 신부는 아예 주소를 이 마을로 옮겼다. 취재 기자라고 밝히자 주변에 있던 붉은 상의를 입은 젊은이가 나서며 “쓰레기 같은 신문”이라며 조롱을 퍼부었다.

해군은 군항 예정지 주변 1.6㎞ 구간에 가설 방음벽을 설치했다. 하지만 중간에 뚫린 농로를 통해 시위대가 들어왔고, 해안에 각종 조형물과 텐트, 가설 무대까지 설치했다.(사진) 여기저기에 ‘No, 해군기지’ ‘강정 사수, 기지 건설 저지’ 같은 구호들이 눈에 띈다. 농로 입구에는 남녀 7~8명이 있었고 그중 한 남성은 쇠사슬을 몸 위에 얹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현장 취재를 하려고 한다”고 하자 미디어 담당이라는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들어가라”고 허락했다. “여긴 국유지인데 무슨 권리로 출입을 제한하느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에 앞서 27일 밤 9시15분쯤에는 공사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70여 명 정도고 육지에서 온 시위대와 현지 주민이 뒤섞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가가자 한 젊은이가 “어서 왔수과. 해군서 왔수과”라며 시비를 걸었다. 다른 사람은 사진기를 뺏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욕설을 퍼부었다. 길 건너편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해군의 계획에 따르면 공사는 30% 정도 진행됐어야 하는데 현재는 14%에 불과하다. 시위대 때문만은 아니다. 공사를 진행하려면 서귀포시가 군항 예정지를 가르는 농로를 폐기하는 행정절차를 밟아줘야 한다. 하지만 고창후 서귀포시장은 군항 반대를 주장하던 변호사 출신이다. 우근민 지사는 군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해당 지역 시장에는 반대파를 임명해 문제가 더 꼬이게 된 것이다. 시간을 끌던 서귀포시는 29일 농로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서귀포 경찰은 “시가 법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한 개입할 수 없다. 저항의 빌미만 준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에는 시위대가 서귀포 경찰서를 방문했던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량 아래로 들어가 경찰청장이 10여 분간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속전철 건설 당시에는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 살고 있는 도롱뇽이 멸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사가 모두 6개월간 중단됐었다. 해군사업단장 이은국 대령은 “군항 공사가 중단되면 매달 60억원씩 손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서귀포 시장 “정부서 최후 통첩 …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해군기지 건설 제주 강정마을에 무슨 일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공사차량 출입구가 반대 세력이 만든 시설물로 막혀 있다. 이 시설물은 6월에 들어섰다. 문 안쪽으로는 공사용 크레인을 만들기 위한 장비가 들어가 있는데 문이 막혀 조립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 남단 강정마을이 군항기지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군항이 들어서게 될 14만5000평에 땅을 가지고 있는 주민은 169명. 전체 마을주민 1900여 명의 10%가 채 안 된다. 이들이 직접 당사자다. 마을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들도 피해자로 분류됐다. 해군은 2009~2010년까지 보상 작업을 실시했다. 총 보상비는 1045억원이고 그중 626억원이 먼저 나갔다. 522억원은 토지가 수용되는 169명의 땅 주인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103억원은 해녀에 대한 어업 보상이다. 보상 최고액은 19억800만원이지만 200만원밖에 못 받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평균 3억900만원을 받았다. 서귀포의 한 주민은 “사실 적지 않은 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진입로가 만들어지면 이에 대한 보상비도 400억원이 나갈 예정이다.

수용·보상 과정에서 동의한 65명(53.8%)에게 300억원이 나갔다. 해군은 협의가 안 된 69명에겐 207억900만원을 공탁했다. 공탁자 중에는 일본 거주자가 2명, 타 지역 거주자가 17명이나 됐다. 그래서 ‘순수 협의 매수 거부자’는 30명 정도였다. 이들도 결국 모두 공탁 보상금을 찾아갔다. 해군에서 “공탁금을 다 찾아가 놓고서 반대하는 건 뭐냐”고 비난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받은 공탁금 때문에 친척들끼리 분란이 벌어진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토지 수용·보상을 마무리한 제주 해군 사업단(단장 이은국 대령)은 2010년 8월 서귀포시에 ‘부지 내 농로 용도 폐지’를 요구했다. 본격 공사를 하기 위한 조치였다. 농로를 없애야 방음벽 설치를 위한 법적 조건이 구비되기 때문이다. 또 농로가 열려 있다 보니 육지에서 온 시위대들이 주민들 중 반대파와 함께 공사 현장에서 포클레인 밑에 드러눕는 등 방해를 할 수 있었다.

외부 세력과 함께 커진 반대 움직임

부지 내 농로 폐쇄를 둘러싼 군과 서귀포시의 갈등을 보여주는 문서. 밑줄 친 부분이 그 내용이다.

군항 건설에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은 소위 외부 세력과 연계되면서 힘을 얻었다. 경찰 등의 자료에 따르면 반대 세력은 주민 50여 명으로 구성된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가 있고 외부 세력으로 구성된 ‘군사기지 범대위(21개 단체)’ ‘생명 평화 결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개척자들’ 등이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문정현 신부는 올 7월 아예 이 마을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2010년 1월엔 사업부지 정지 작업을 방해하고 4월에는 바다에 오탁 방지막을 설치하는 걸 막았다. 2011년에 벌어진 반대 활동도 외부 세력이 주도했다고 한다. 2011년 1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제주도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기지 건설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부두공사 진입로 공사 방해, 쇠사슬 시위, 블록 제작·크레인 이동 방해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집계된 방해 활동은 3월에 30회, 4월 34회, 5월 43회, 6월 61회다.

반대 논리는 다양하게 변화 중이다. 절차 잘못에서 시작해 ▶환경 파괴 ▶중국 자극 ▶미군 기지화 같은 이유로 진화해갔다. 주민들은 주로 결정 절차의 하자를 거론하고 있다. 외부 세력은 환경·안보 같은 이슈를 내세운다. 환경 이슈엔 “부지 내 개울에 맹꽁이와 멸종위기 붉은발 말똥게가 산다” “항구 앞 바다에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이 있다”는 등 ‘천성산 도롱뇽’을 연상시키는 환경 이슈가 있다. 해군은 이런 주장이 제기되자 말똥게 전체를 포획해 3㎞ 인근 약천사 옆 개울로 옮기는 중이다. 연산호는 반대 세력이 중요시하는 이슈다. 그런데 7월 초 야 5당 조사단이 직접 바다에 들어갔지만 찾지 못했다. 바닥엔 모래만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대보존구역을 잘못 해제했다’ ‘공사 시 바다가 혼탁해진다’ 등의 주장도 제기된다.
 
시작된 농로 용도폐기 싸움
2010년 7월 12일 국방부로 토지 명의가 다 옮겨졌다. 해군 사업단은 8월 서귀포시에 ‘농로 용도 폐기’를 요구했다. 이후 2011년 6월까지 20여 회에 걸친 협의가 이뤄졌지만 서귀포시는 계속 부정적이었다. 이 단장은 “지난해 말엔 ‘주민 갈등이 있다’, 올해 초엔 ‘농사 완료 뒤 해준다’, 올해 4월엔 ‘제주특별법이 통과되면 해준다’며 계속 미뤘다. 그 뒤엔 ‘시청을 불지른다는 협박이 있어 안 된다’고 했고 5월 제주평화 포럼 때는 국무총리실 국장이 ‘해주라’고 했지만 안 됐다. 7월엔 폐지 발표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가 취소했다”고 했다.

서귀포시는 “사람들이 농로를 사용 중이며 주민이 갈등 중이니 시간이 필요하다”고 6월 7일부터 똑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7월 6일 국무총리실 주재 관계부서 회의 때 이명도 서귀포 부시장은 “농로 기능이 상실되지 않아 용도폐지가 어렵다”며 “중앙에서 직권 폐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서귀포 경찰도 소극적이었다. 사업단에 따르면 경찰은 몇 년째 ‘용도가 먼저 폐지돼야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상 반대 시위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7월 21일 서귀포 경찰서를 방문했던 조현오 경찰청장은 반대 시위에 막혔다. 10여 분간 경찰서에 들어가지 못한 채 차 안에 있어야 했다. 화가 난 조 청장은 “30명을 경찰 300명이 해결하지 못하느냐”고 질타했다. 28일엔 모강인 해양경찰청장이 방문해 “의지가 약하다”고 비판했다. 취재팀은 29일 송양화 서귀포 경찰서장을 인터뷰하려 했다. 그러나 비서실을 통해 “현재 여건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서귀포시는 시간을 끌고 경찰은 방관하는 사이 기지 부지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랐다. 펜스엔 반대 구호가 걸리고 해안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해방구가 돼갔다.

사업단의 영관급 장교는 “고창후 서귀포 시장이 일처리를 잘못했다”고 비난했다. 고 시장은 기지건설 반대파의 변호인 출신이다. 그런데 그를 우근민 지사가 지난해 7월 강정마을을 관할하는 서귀포 시장으로 임명했다. 제주특별자치법에 따라 제주도의 시장은 지사가 임명한다. 고 시장은 인천·서울에서 판사로 근무한 뒤 1999년 이후 제주도에서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기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반대지만 시장으로선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해왔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현지 주민은 “우 지사는 고 시장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서도 한편으론 중앙정부와 ‘받아낼 수 있는 지원’을 계속 흥정했다”며 “강정 옆마을인 대포 출신인 데다 국회의원 출마를 고려하는 고 시장으로선 최대한 버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정부도 섬 외부를 ‘육지 것’으로 보는 제주 특유의 사고 방식과 4·3 피해의식 같은 것을 고려해 쉽게 압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 압박에 서귀포시 손들어
서귀포 고창후 시장은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29일 농로를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 시장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지난해 8월부터 중앙정부의 요구에 맞서며 버텨왔다. 하지만 지난 27일을 기한으로 하는 정부의 최후통첩에 따라…결정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사랑하는 강정 주민 여러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아직도 평화적 해결에 대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공권력 투입은 결코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고 시장에게 30일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격앙된 강정 주민들을 건드릴 수 있으니 인터뷰를 사양한다”고 했다.

그러나 ‘농로 용도폐기’로 상황이 모두 정리된 것은 아니다. ‘공유수면관리권’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럼비 해안에 부두를 만들려면 반대파의 시설물을 철거하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내보내야 한다.

해군 사업단은 ‘관리권이 서귀포시에 있으니 시가 정리해달라’고 2010년 9월부터 요청했다. 반대파 변호사들도 ‘관리권은 시에 있다’고 인정한다. 국토부도 그렇게 정리했다. 그러나 시는 ‘해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거부하다 6월 16일 법제처에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따라서 법무부가 이 문제를 정리할 때까지 구럼비 해안에서 반대파 시위대가 텐트를 치고 시위를 벌이는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군 측에 따르면 2010년 1월 이후 8개월 동안 공사가 지지 부진했다. 공사가 완전 중단되면 월 59억80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제주 강정마을, 계룡대 해군 본부= 안성규 기자, 김기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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