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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에 구청장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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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기원
사회부문 차장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의 힘은 세다. 490명의 공무원 인사권을 쥐고 있고, 올 한 해만 1551억원의 예산을 주무른다. 그가 구청장으로서 가진 권한은 어디에 도로를 신설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건축허가권, 불법주차 단속권까지 3888개에 이른다. 광역단체인 울산시가 반대하는 전면 무상급식을 비롯해 5개 분야 49개 공약사업도 자기 구상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힘의 출처는 법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구청장 자리에 올랐고, 그가 3888개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지방자치법 등 관계법에 근거한 것이다. 법이 무시되면 힘도 잃는다. 그가 일반 주민보다 더 법 준수에 앞장서야 할 이유다.

 그런 윤 구청장이 대놓고 법을 위반하고 있다. 1년 사이에 똑같은 사안을 두고 이미 세 번이나 위법행위를 했고, 현재 네 번째 위법행위를 진행 중이다. 울산 북구 진장유통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코스트코와 중소상인 간 갈등을 놓고서다.

 처음에는 건축심의 신청서에 대해 심의도 않고 반려했고, 이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자 그 다음 단계인 건축허가 신청서를 반려했다. “건축법상의 구비 요건만 충족하면 되는데 그와 무관한 ‘중소상인의 반발’을 이유로 반려한 것은 위법”이란 게 울산시 행정심판위원회(행심)의 재결(판결)이다. 행심은 행정기관의 잘못으로 인한 시민 피해를 바로잡는, 행정기관 내 법원 격이다.

 셋째는 아예 행정심판법 위반이다. ‘건축허가 신청서 반려를 취소하라’는 행심 재결에도 불구하고 재차 허가신청을 반려했다. 행정심판법 제49조에는 ‘행정청은 행심 결정을 즉각 따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행심이 “즉각 건축허가를 해주라”고 콕 찍어 결정했지만 이마저 묵살할 태세다. 그는 지난 21일 자신이 소속된 민노당에 건축불허 입장을 고수할 수 있도록 지원투쟁을 요청했다.

 윤 구청장도 위법은 인정한다. “법에 어긋난 것은 맞지만 행정을 법 규정대로만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대형마트의 횡포로부터 중소상인을 보호해야 한다”게 그의 명분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가격하락으로 일반 주민이 덕을 본다. 취급 상품의 덩치가 커 중소상인들에게 도매상 역할로 되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갑갑한 것은 윤 구청장의 희한한 논리다. 자신이 정당하다는 근거로 “광주광역시 북구, 경남 창원에서도 합법적인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곳은 손해배상 소송이 들어오자마자 자치단체장들이 바로 건축허가를 내줬다. 법집행 책임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고의적 위법을 했고, 장기간 찬반논란으로 지역갈등만 키웠고, 종내 자신들에게 금전적 책임추궁이 들어오자 꼬리를 내려버린 비겁한 처신일 뿐이다.

 윤 구청장은 지난해 주민들에게 주정차 위반 등으로 무려 2만580건의 과태료 처분을 했다. 올해도 이에 못지않은 양의 과태료 처분을 했다. 이들 주민이 “대놓고 법을 어기는 구청장이 우리한테 벌을 줄 자격이 있느냐”고 따지면 어떤 대답을 할까.

이기원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