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아날로그세대] 下.그래도 희망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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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崔모(66.경기도 안산시 일동) 씨는 요즘 인터넷에 푹 빠져 있다. 그가 인터넷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네트워크 바둑'' 을 알게 된 지난해 10월부터다.

"동네 기원이 속속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보니 유일한 소일거리마저 같이 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컴퓨터를 통해 누군가와 바둑을 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

그는 우선 막내아들이 쓰던 486컴퓨터를 펜티엄급으로 용량을 교체한 뒤 인터넷 강사를 초빙, 기초적인 컴퓨터 조작법과 바둑사이트 찾아가기 등을 하루 만에 배웠다. 그리고 매일 5~6시간씩 바둑 두기에 몰입했다.

3개월쯤 지나니 컴퓨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마우스로 이곳저곳 클릭만 해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흥미를 느낀 그는 인터넷입문서를 사와 무조건 따라했다. 평소 관심이 있던 골프와 시사 관련 사이트를 주로 찾아다녔다.

"자꾸 하니 이제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는 그는 지난주 미국 친손녀에게 e-메일 카드를 보내고는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혁명에 초조해하는 아날로그 세대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를 재도약이나, 삶을 풍요하게 만들 기회로 삼는 중년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의외로 쉽다" 고 말한다.

지난 17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전화국 컴퓨터교육실. H백화점이 40, 50대 주부 고객 50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인터넷 교육강좌를 열었다.

이들은 대부분 컴퓨터를 켜 본 적도 없는 완벽한 컴맹. 그러나 단 3시간 실습을 해 보고는 본지 취재팀이 ''인터넷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느냐'' 는 설문에 98%가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다음에 이런 교육이 있으면 참석하겠느냐'' 는 질문엔 전원이 동참 의사를 나타냈다. 이런 열기는 정통부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1백만 주부 인터넷교육 프로그램'' 에서도 확인됐다. 전국 7백69곳에 지정한 운영학원마다 주부들로 초만원을 이룬 것이다.

인터넷 강사 성규철(成圭哲) 씨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면 아날로그 세대에게도 인터넷 정복은 충분히 가능한 일" 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세대들의 이런 욕구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사회 제반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

초보자들을 모아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인터넷을 가르치는 교육 시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주부 朴모(48) 씨는 "비싼 돈을 주고 집 주변 학원에서 수강했다가 대부분 젊은층이라 따라가기가 벅차 중도에 포기했다" 고 말했다.

인터넷 교육기관인 ''네트로21'' 의 관계자는 "교육기관이 사업성만을 따져 초보 수준을 벗어난 중간층을 위한 맞춤 교육이 거의 없다" 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나 대학 등의 시설을 아날로그 세대들을 위해 과감히 개방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부 사이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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