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醫師로 아는 학생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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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호 35면

지난 20일 오전 서울 힐튼호텔의 국화홀에서 열린 도산아카데미 조찬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다. 강사로 나선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설명하다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중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On Sunday

▶선생님:“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학생:“의사가 왜 사람을 죽입니까.”

역사 공부를 소홀히 하다 보니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본 상식조차 갖추지 못해 ‘의사(義士) 안중근’을 병을 고쳐주는 ‘의사(醫師)’로 착각하더라는 얘기였다. 이 위원장은 “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몰라서인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인지 부모 세대가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얘기가 많다”며 씁쓸해했다. 강의를 듣던 60여 명의 청중도 헛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사살은 개인 차원의 암살이 아니었다. 그는 일제에 의해 뤼순(旅順) 법정에 섰으
나 “나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으로 적장을 저격했다”고 네 차례나 진술했다. 이 위원장은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로 대표되는 일본의 국제 정신이 당시 동양 평화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군인으로서 의거를 결행한 것”이라며 “일제가 이를 무시한 채 개인 차원의 살인죄를 적용해 처형했지만 우리 교육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이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접한 뒤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흔치 않다. 이 위원장은 “안 의사의 거사는 단순 살인이 아닌 철학적 기반을 갖춘 것”이라고 했다.

그간 일본이 독도 영유권과 역사 교과서 왜곡을 꺼내들면 우리 사회는 발끈했다. 일본 자민당의 우익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 계획을 밝힐 때도 온 사회가 나섰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선 정작 과거 한·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의사 선생님’ 안중근이라고 알고 있을 정도라면 중·고교 학생들의 역사의식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안 의사의 의거가 왜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해시킬 방법이 없다. 그가 1908년 국내 진공(進攻)작전을 하며 포로로 잡은 일본군 20여 명을 심문한 뒤 국제법에 따라 풀어줬던 신념의 소유자라는 사실도 배웠을 리가 없다. 안 의사는 법정에서 “(군인으로 전투에 나서 적장을 사살한 만큼) 내게 ‘만국공법(국제법)의 포로에 관한 법’을 적용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지난해 2월 한국교원단체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학생 3919명을 조사한 결과 3·1절을 ‘독립운동 기념일’로 답한 학생이 59.1%였다. 열 명 중 넷은 ‘애국선열 추모일’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날’ ‘헌법 제정일’ 같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세미나를 마친 후 이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반드시 넘겨줘야 할 것엔 투철한 역사인식도 있다”며 “과거를 모르는데 어떻게 미래의 좌표를 정확히 잡을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학교든 가정이든 더 이상 역사 교육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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