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학생이 문제라는 선생님 … 선생님에겐 문제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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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대니얼 T 윌링햄 지음
문희경 옮김, 부키
304쪽, 1만6000원

아시다시피, 머리 굵은 중학생쯤 되면 학교는 더 이상 재미있는 곳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과 매일 씨름하느라 바쁜 교사들도 학교가 즐겁지 않다. 학생들과 소통, 창의적인 수업, 배움의 공동체… 교사가 잠시만 긴장을 늦추면 금세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교실에선 모두 꿈 같은 얘기다. 그런데 이 책은 지쳐있는 교사들을 향해 냉정하게 말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학생이 호기심을 오래 유지하며 학습을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교사가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풍부한 인지과학 실험들을 사례로 들며 학생과 수업, 성적에 관해 교사들이 알아야할 9가지 원리를 문답 형식으로 풀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질문 “학생들은 왜 텔레비전에서 본 건 다 기억하면서 교사가 한 말은 다 잊어버릴까”. 저자의 답 “인간의 뇌는 기억하고 싶거나 기억하려고 애쓰는 정보가 아니라 여러번 생각한 정보를 기억에 저장하기 때문”. 이 원리를 아는 교사는 혼자 묻고 답하는 모노드라마식 수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준다.

 마지막 9번 문답에 이르자 저자는 교사들에게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비디오 카메라로 수업 장면을 찍어 동료교사와 모니터하고 교수법을 연습하라”고 말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도 각오하라”고 독하게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장을 처음 열었을 때보다 기분이 한결 낫다. ‘과학으로 포장한, 그렇고 그런 교수법 지침서 아닌가’했던 의구심이 누그러졌다. “인지과학이 교수법을 계획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고 인정하는 솔직함에 마음이 놓였다. 저자는 지식 교육의 공간인 동시에 정서적·사회적 공간인 교실의 특징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교원평가니 혁신학교니 떠들썩하기만한 우리 교육에 지금 필요한 건, 그럴싸한 구호가 아니라 과학자의 절제된 분석 아닐까. 학기말 강의평가가 신경 쓰이는 대학 교수, ‘창의력이 대세’라며 자녀를 창의력전문학원에 보내는 학부모에게도 유용할 듯 싶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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