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갈 데 까지 간 '빚'…파산 갈림길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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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한 학생이 미국 정부 부채가 14조 달러가 넘어섰다는 표지판을 세우고 있다. [AP]


뉴욕 맨해튼 거리에는 특별한 시계가 있다. 미국이 지고 있는 전체 빚의 액수와 가구당 빚의 액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미국 부채 시계(The National Debt Clock)다. 대형 광고판 크기의 이 시계는 1989년 세이모 더스트라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미국이 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빚'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 제작 당시만 해도 미국의 전체 빚은 3조 달러가 채 안됐다. 이 때문에 시계는 13자리(조단위)까지만 표시되도록 설계됐다.

전쟁·의료비 상승 지출 늘고, 불경기로 세금 줄어 수입 감소

문제는 2008년 9월30일 미국의 국가 부채가 10조 달러를 돌파하면서 불거졌다. 14자리인 10조 달러를 표시할 수 없었던 것. 결국 보수작업에 나서 지금은 1000조 달러까지 표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이 시계의 수치는 매초당 1000달러씩 올라가 이미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액인 14조3000억 달러를 넘어서 버렸다. 1인당 약 5만달러 가구당 약 12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돈을 더 빌릴 수 있도록 빚 한도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가 이에 반대하면서 미국은 사상초유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리고 있다. '빚' 논쟁을 놓고 뉴욕타임스 LA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의 분석을 정리해 본다.

◆ 부채 한도액은

1917년 미국이 1차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전쟁수행에 따른 정부지출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결국 의회는 재무부에 장기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빚을 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의회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지게 되는 빚의 한도액을 정하게 된다. 이후 한도액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한도액을 상향조정 할 때마다 의회는 진통을 겪어왔고 지금처럼 행정부와 의회가 여소야대 상황일 때는 그 논쟁이 더 치열했다.

경제학자들은 단순히 빚의 액수보다는 국내총생산(GDP)과 빚의 비율을 따진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부채액은 GDP의 120%에 달했다. 이 비율이 가장 높을 때다.

카터 행정부 때는 이 비율이 30% 가까이 떨어졌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를 거치며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 비율은 클린턴 집권 1기에 GDP대비 70%까지 올라간다. 클린턴 집권 2기에 60%로 잠시 떨어진 이 비율은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80%로 올랐고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서의 비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

◆ 빚이 늘어난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가 벌어들이는 소득인 세금보다 쓰는 게 더 많아서다. 이 소득과 지출과의 차이가 '예산적자'다. 이러한 예산적자를 메우기 위해 재무부는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게 된다. 결국 예산적자가 심해지면 빚도 많이 지게 된다.

최근 들어 정부지출이 늘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전쟁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이 예산적자의 가장 큰 이유다. 고령화는 또 다른 원인이다. 노인들을 위한 복지비용이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비용이 높아지면서 메디케어(노인대상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서민층 의료보험) 부담도 높아졌다. 반면에 불경기로 정부의 세금 수입은 줄어들게 됐다. 동시에 경기부양책으로 씀씀이는 커졌다. 결국 빚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부채 한도액 안올리면

빚이 계속 늘어나면 결국 부채 한도액을 넘어서게 된다. 의회가 한도액을 올리지 않으면 재무부는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된다. 정부의 현재 세금수입으로는 정부에 날라오는 각종 청구서에 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8월에 1720억 달러의 세금이 걷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지출해야될 금액은 30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론적으로는 한도액 증액없이 절반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이자를 물면된다. 하지만 어떤 것을 지불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지급해야 할지 또 그래도 되는 지에 대한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

적자 메우려 채권 발행하니 빚 14조 3천억달러 넘어서

◆ 채무불이행 발생하면

가능성은 낮지만 8월2일까지 부채 상한선이 올라가지 않으면 미국정부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일단 미국 정부가 빚을 갚을 능력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정부 채권을 사려는 사람들은 정부에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이자율도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는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며 돈을 빌려야 한다. 이는 미국 경제에 파급효과가 크다.

미 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의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국채 이자율이 올라가게 되면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주게 되며 모지기 자동차 융자 크레딧 카드 학생융자 이자율도 함께 춤을 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국가가 디폴트 사태를 맞게 되면 미국 경제가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국가 신임도가 하락하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거액의 미국 국채를 소유하고 있는 중국은 "채권자를 걱정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를 날렸다.

다음달 2일에 국가 디폴트 기능, 국채 이자율 상승·경제 충격 우려

◆민주.공화 왜 싸우나
정부 디폴트를 눈 앞에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한 발 물러서 겁쟁이(치킨)로 몰리지 않겠다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이유는 예산적자 해법에 대한 서로의 시각차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입장이다. 특히 부자들에게 감세혜택을 주는 것을 철회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강조한다. 정부지출을 줄이고 복지예산을 삭감하라는 것이다.

양당이 물러서지 않는 또 다른 배경에는 내년에 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위기'를 핵심 이슈로 몰고가 오바마 행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이 3~4개월 단위의 임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내년까지 부채 상한선 이슈를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enough is enough)'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것도 여기서 밀리면 대선까지 흔들린다는 절박함이 담겨있다.

김기정 기자 kijungki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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