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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민국 증시 대논쟁 … 12개 증권사 사장님은 왜 법정에 불려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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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현대증권 최경수 대표와 이트레이드증권 남삼현 대표가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이들은 최근 ELW(주식워런트증권) 관련 불공정행위를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2009년 4월~2010년 6월까지 ‘스캘퍼(초단타 매매자)’에게 내부 전산망을 이용하게 하고 시세 정보도 우선 제공해 13억원의 수수료 이득을 챙기고….”

 검찰이 기소 내용을 읽어가자 그동안 무표정했던 최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공판 전 “우리가 잘못한 게 크게 없는데 뭐…”라며 여유를 보였던 남 대표도 낯빛이 검게 변했다. 이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허만 변호사(법무법인 세종)가 변호인 모두진술을 통해 검찰의 기소 내용을 조목 조목 반박했다.

 그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지 부정한 거래가 아니다”며 “일반 투자자와 스캘퍼는 경쟁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캘퍼 지원 논란 CEO 12인 *회사 이름 가나다 순.<사진크게보기>


 검찰과 12개 증권사 간의 ‘ELW 대전’이 시작됐다. 이날 현대·이트레이드증권에 대한 공판을 시작으로 주요 증권사 대표가 차례로 법정에 선다. 검찰이 증권사 전·현직 대표 12명을 무더기로 기소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검찰에 맞서 증권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등 이른바 ‘빅6’로 불리는 대형 로펌으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빅6’ 대형 로펌이 민사소송도 아닌 형사재판에서 피고인 측을 일제히 변호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ELW의 상품 구조가 복잡한 데다, 적용되는 법조항도 광의적이라 앞으로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달 ELW 불법거래를 통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스캘퍼 손모(40)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다른 스캘퍼 1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와 함께 스캘퍼에게 주문 속도가 빠른 직접전용주문(DMA) 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한 혐의로 증권사 대표와 임원을 대거 불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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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건의 핵심은 DMA 서비스의 불법 여부다. 검찰은 DMA가 일반 투자자에게 제공되지 않는 특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부정 거래로 보고 있다. 시세가 초 단위로 변하는 ELW시장에선 얼마큼 빠르게 매매를 하느냐가 수익률에 영향을 주는데, 증권사가 스캘퍼의 주문 속도를 높여 수익 확률을 키워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권사는 수익에 큰 기여를 하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며, 해외에서도 DMA를 허용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남길남 파생상품실장은 “세계적 추세인 DMA가 국내 ELW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사용됐음에도 규제장치 없이 곧장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DMA로 인해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봤는지도 쟁점이다. 증권사가 스캘퍼를 통해 ELW 거래량을 늘려 일반 투자자를 유인했고, 스캘퍼에 비해 투자정보가 부족하고 거래 속도가 느린 투자자는 손실을 봤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ELW시장이 기관 투자가인 유동성 공급자(LP)와 스캘퍼가 ‘치고받는’ 시장이어서 스캘퍼 전용선과 개인의 피해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증권사 대표는 “스캘퍼는 LP의 움직임을 예상해 가격이 변하는 시차를 노려 수익을 내기 때문에 0.01초가 중요하다”며 “그러나 일반 투자자는 현물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빠른 회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위해 각종 파생상품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있다. 한 검사는 시장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소액으로 직접 ELW 단타매매에 나섰다가 돈을 날리기도 했다.

 증권가에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 기소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내 증권업계의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대표는 “뒷돈을 받거나 사익을 취했다면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던 관행을 문제 삼아 사장단을 무더기로 기소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언제 소환될지 몰라 해외 출장 일정도 잡지 못해 사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스캘퍼 손씨가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손씨는 검찰이 기소 근거로 삼은 자본시장법 178조 제1항 중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 조항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제청을 했다. ‘부정한 수단’에 대한 검찰의 해석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손씨는 과거 DMA 이용 문제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나, 법적 근거가 없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를 위헌제청의 근거로 삼고 있다.

손해용·허진 기자

◆주식워런트증권(ELW)=개별주식 및 주가지수 등의 기초자산을 미래 특정 시점(만기일)에 미리 정해진 가격(행사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내는 유가증권.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과 달리 일반주식 계좌에서 소액으로도 거래할 수 있다.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조6374억원으로 세계 2위 시장으로 성장했다.

◆스캘퍼(Scalper)=대표적 단기투자자인 ‘데이트레이더’보다 더 짧은 시간 단위로 거래하는 초단기투자자를 말한다. 보통 하루 2~3분 단위로 수십~수백 번 거래에 나서 단기 시세 차익을 챙긴다. ‘가죽 벗기기’라는 의미인 ‘스캘핑’에서 유래됐는데 이는 가죽처럼 얇은 이윤, 즉 ‘박리(薄利)’를 여러 번에 걸쳐 챙긴다는 의미다.

◆유동성 공급자(LP·Liquidity Provider)=지속적으로 ELW가 거래될 수 있도록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해 시장 가격 형성을 유도하는 주체를 말한다. 보통 증권사들이 LP 역할을 맡고 있다.

◆직접전용주문(DMA·Direct Market Access)=증권사 딜러들의 주문처리 작업을 거치지 않고 증권사 시스템을 통해 바로 거래소로 주문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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