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해외투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쌓아둔 외환보유액 가운데 일부를 해외투자에 쓰기로한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자칫 아까운 외화를 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는 환율안정을 목적으로 한국은행을 통해 위탁운용 중인 1백억달러의 외국환평형기금 가운데 약5억달러를 올해안에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게 맡겨 주식.채권 등 해외금융상품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우선 이달중 산업은행이 주체가 되는 해외투자펀드에 외평기금 3억달러를 예탁, 아시아시장 등의 해외 주식.채권상품에 투자하고 하반기 중 다시 2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정부가 보유외환을 해외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외환위기이후 처음이다.

◇ 재경부.한은의 엇갈린 입장 = 허경옥 재경부 국제금융과장은 외평기금의 해외투자결정 배경에 대해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해외 투자자산을 늘리고 다양화시켜 궁극적으로 외환수급을 원활히 하자는 것" 이라고 말했다.

許과장은 "이번 투자는 정부가 산업은행에 외화를 빌려주는 (예탁) 방법으로 이뤄져 설사 투자가 잘못돼도 산업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을 직접 관리하는 한국은행은 어렵게 쌓아올린 달러를 전망이 불투명한 주식.채권 등 해외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무리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일단 외평기금을 헐어 사용할 경우 전체 외환보유액은 줄어들게 되며, 그만큼 유사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정보영 한은 국제금융국장은 "유동성 위기에 대응할 최후의 보루인 보유외화를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 전문가들은 =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미국주가가 언제 하락할지 모르는 시점에서 아시아시장 등 이머징마킷에 보유외환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일시적인 유동성 조절에 연연하지 말고 시장기능에 의해 환율을 조절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고 주문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전에 정부가 일부 보유외환을 경쟁적으로 해외투자에 나선 시중은행들에 예탁했다가 결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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