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22> 한·일 골프대항전, 머리싸움을 보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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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작전에 대한 평가는 결과론이 되게 마련이다. 무모한 전략이라도 이기면 상대의 허를 찌른 기발한 작전이 되고, 치밀한 작전도 운이 나빠 실패하면 무리수로 치부된다. 한국은 KB금융 밀리언야드컵 한·일 골프대항전에서 일본을 꺾었다. 이겼으니 좋은 작전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적어도 골프 단체전의 머리 싸움을 보는 재미는 덜했던 것 같다.

한·일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라이더컵에서 조 편성과 경기 대진 순서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은 엄청나다. 10년 만에 라이더컵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2008년 캡틴 폴 에이징어는 그 작전에 관한 책도 썼다. 그와 맞선 유럽의 캡틴 닉 팔도는 조 편성 메모를 흘리는 실수를 했고 경기에 졌다. 그는 유럽 미디어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당했다.

밀리언야드컵에서 한국은 철저히 정공법을 썼다. 한장상 단장은 포볼과 포섬 경기에서 양용은-김경태, 배상문-강경남을 한 조로 묶었다. 이길 조는 확실히 이기고 가자는 전략이었다. 또 매 라운드 에이스를 맨 마지막에 두고 경기했다.

그러나 양용은과 김경태가 한 조로 나가는 것이 옳은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일본이 무서워하는 한국의 원투 펀치 두 선수가 한 조로 나가서 이길 가능성은 90% 정도로 볼 수 있다. 기대할 수 있는 승점은 0.9점이다. 반면 한·일전 경험이 없는 선수와, 경험이 있더라도 전적이 좋지 않은 두 선수가 한 조로 나가서 이길 가능성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전반적으로 일본 선수들의 세계 랭킹이 한국보다 높고 경기력 편차도 작다. 또 라이더컵 포맷의 단체전은 일반 스트로크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경기다. 경험은 실력 이상으로 중요하다. 라이더컵에서 루키 둘이 한 조로 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기면 아주 고맙고 져도 별 타격이 없는, 버리는 카드로 쓰는 경우가 많다. 간혹 이기기도 하지만 흔치는 않다.

한국 루키 조의 승리 가능성을 30%라고 보면 기대 승점은 0.3점이다. 양용은-김경태 조의 0.9점과 합치면 1.2점이 된다. 양용은과 김경태가 갈라져서 경험 적은 선수와 한 조로 나가면 승률은 70% 정도로 볼 수 있다. 2개 조의 기대 승점은 1.4점이다.

한국은 첫날 포섬 경기에서 2-3으로 밀렸다. 필승조 2개 조를 뺀 나머지 3개 조에서 모두 졌다. 한국의 경험 적은 선수들은 “첫날인 데다 실수하면 만회가 되지 않는 포섬 방식이어서 많이 떨렸다”고 말했다. 양용은과 김경태는 평소 다른 브랜드의 공을 쓴다. 같은 공을 교대로 쳐야 하는 포섬에서 두 선수 조합의 효용은 더 낮아진다. 요즘 공은 성능 차이가 크지 않지만 특히 퍼트에서 감의 차이가 있다. 심리적으로는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 날 포볼 경기에서 한국은 2승2무1패로 선전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은 매우 좋았다. 더 많은 승점을 챙겨야 했다. 17번 홀까지 상황만 보면 한국은 4승1무로 압도했는데 마지막 홀에서 3개 조가 우르르 지는 바람에 2승2무1패가 됐다. 한장상 단장은 “젊은 선수들의 몸에 힘이 들어가 그랬다”고 질타했지만 조 편성이 더 큰 문제였다고 기자는 본다. 포볼 경기에서는 한 사람만 잘 치면 된다. 양용은과 김경태가 역시 한 조에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

순서도 문제다. 지난해부터 한국은 가장 강한 선수를 매일 마지막에 넣고 있다. 거의 유리로 된 투명한 대진표다. 우리의 카드를 완전히 보여주고 하는 게임과 같다.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상대가 버리는 카드를 우리 에이스에 던지고 주력 선수를 앞쪽에 배치했다면 전세는 달라질 수 있었다.

2002년 라이더컵에서 유럽의 캡틴 샘 토런스는 뛰어난 선수들을 앞쪽에 집중 배치해 기선을 제압했고, 열세라는 예상을 뒤집고 이겼다.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의 베테랑 잭 니클라우스는 “강한 선수들을 징검다리 식으로 배치하는 전략이 가장 좋다”고 했다.

단장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골프는 개인전이다. 감독이라는 직업 자체가 없다. 감독의 역할을 하는 단장보다는 캡틴(주장) 제도가 더 어울린다. 선수를 잘 알고 경기감각도 뛰어난 리더십 있는 고참 선수가 효율적이다. 라이더컵에선 50세 전후의 선수가 캡틴을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잔소리를 한마디 더 하자면 선수들보다 자원봉사자의 패션이 오히려 더 그럴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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