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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검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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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하버드대·예일대 출신의 당대 최고 인재들로 짜여졌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행정부가 어떻게 미국 역사상 최대의 실패 속으로 빠져든 것일까. 베트남전 개입 과정을 추적한 데이비드 핼버스텀(David Halberstam)의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자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은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또다시 위기에 놓인 검찰을 지켜보면서 품게 된 의문도 비슷했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 자부하던 검찰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 넣은 것일까. 국회 입법에 맞서다 최소한의 명분마저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들로선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진정성을 국민 앞에 어떻게 보여 줄지 고민했을 것이다. “인권보호 차원에서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에도 설득력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태는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탓이다. ‘검사장 집단 사의 표명’이란 카드로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수정에 항의하고 나선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을 뛰어넘는 월권이었다.

 이처럼 믿기지 않는 판단 실패가 새 총장을 임명하고 간부들을 교체한다고 해서 재연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검찰 내부의 조직문화에, 검사들의 집단 무의식에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부 문화를 드러내는 것이 “나는 대한민국 검사다”라는 말이다. 검사직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 자부심은 거악(巨惡)에 맞서 사회정의를 지킨다는 테두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 검찰권의 우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쓰인다면 오용이요, 남용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거물 정치인이나 경제인 수사를 하다 보면 착각에 빠지기 쉬워요. 그들의 범죄를 들여다보면서 ‘이 사람들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국회의원이 검은돈을 받으면 수사 대상이지만 여의도 의사당에 있을 땐 엄연한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혼동하게 된다. 여기에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엇비슷한 대학을 나와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줄곧 같은 길을 걸어온 ‘닮은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면전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육성을 듣기 힘들다는 점도 외부 여론과 동떨어진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다.

검찰 조직 안에선 통하는 정의감과 진정성이 외부에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역설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총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퇴하고, 김준규 총장이 “범죄의 환부만 도려내겠다”며 추진한 수사 패러다임 개혁이 무위에 그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사는 법정에서 죄와 벌을 묻는 직업이다. 하지만 자신들도 국민의 법정 앞에 서 있다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 스스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검찰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각오와 자성의 노력이 다져질 때 검찰이 그토록 원하는 국민의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