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지킨 평창” 이미지 좋아, 친한파 2명 불참이 변수 ‘입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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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이 2일 남아공 더반 킹샤카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더반=연합뉴스]

“평창이 되면 올림픽 역사에서도 좋은 의미가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평창을 찍을지는 글쎄, 물음표로 남겨두겠다.”
지난달 23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올림픽 데이’ 행사에서 만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이렇게 귀띔했다. 그는 “동료 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게르하르트 하이베르그(노르웨이) IOC 위원은 지난달 “IOC 위원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투표한다”는 말을 남겼다. ‘머리’로는 평창의 세 번째 도전의 당위성을 알지만 ‘마음’은 경쟁 도시를 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 외신이 “평창이 선두주자”라고 보도하며 국내에서 장밋빛 전망이 줄을 잇지만 표심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그 안개도 사흘 후면 걷힌다. 6일 오후 5시(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IOC 위원의 투표 후 자크 로게 위원장은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한다.
 
박빙 판세에 IOC가 더 긴장
판세는 평창-뮌헨(독일)의 ‘2강’ 대 안시(프랑스)의 ‘1약’ 구도다. 프랑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초 더반에 오기로 했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안시가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짓고 총리를 대신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평창과 뮌헨의 경쟁은 ‘새로운 지평’ 대 ‘뿌리와 전통’으로 압축된다. 평창은 아시아라는 겨울스포츠의 새 시장을 만들어 올림픽의 유산(legacy)으로 삼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지난 두 번의 실패를 딛고 IOC의 요구에 맞도록 약속을 지켰다는 모범생 이미지도 강점이다. 국민의 90% 이상이 유치를 지지한다는 점도 유치 반대 운동이 거센 뮌헨에 비해 돋보인다.

뮌헨은 “겨울스포츠의 전통이 살아있는 뮌헨에서 올림픽 정신의 배터리를 충전해야 할 때”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유치전의 핵심은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이다. 그는 차기 IOC 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국제 스포츠계 유력 인사다. 여기에 유치위원장인 ‘피겨의 전설’ 카타리나 비트도 특유의 친화력과 화술로 IOC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뮌헨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설상 경기가 열릴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역 농민들이 “농지를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기도 했고, 유치 반대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까지 열렸다. 지금도 올림픽 유치 반대 운동인 ‘놀림피아(Nolympia)’ 등이 골칫거리이지만 바흐 부위원장은 “세련된 민주주의 국가인 독일에선 반대 목소리가 있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며 “일단 유치가 결정되면 놀랍게 단결하는 게 독일인의 캐릭터”라고 반박해 왔다.

한 미국인 IOC 전문기자는 “올림픽 유치전을 20년간 취재해 왔지만 이렇게 치열한 경쟁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IOC 사무국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지난달 올림픽 데이 참석차 로잔을 방문한 뮌헨·평창 관계자들은 행사장 앞에서 안전요원들의 저지를 받았다. 올림픽 데이에 참가하는 IOC 위원들을 상대로 각국 유치위가 막판 로비를 벌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평창의 든든한 원군은 이명박 대통령과 ‘피겨 여왕’ 김연아(사진) 선수다. 이 대통령은 더반 IOC 총회에 참석해 평창의 총력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건희 IOC 위원과 문대성 IOC 선수위원 및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부와 체육계 인사들도 총출동한다.

더반 현장에서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뮌헨 출신 기자인 마티아스 크리스틀바우어는 기자에게 평창의 상황을 물어오며 “평창은 가장 효율적인 경기장 구성이 돋보인다”고 치켜세우면서도 “모든 조건을 갖춘 후보도시가 항상 IOC의 선택을 받아온 건 아니다”라며 견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평창을 위해 뛰어온 영국인 올림픽 유치 전문 컨설턴트 마이크 리는 “낙관적 상황이긴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며 “투표권을 쥔 IOC 위원들의 마음의 향배는 끝까지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IOC 위원들의 표심이다. 투표권을 쥔 IOC 위원은 110명이다. 이 중 로게 위원장은 관례에 따라 투표에 불참하고, 후보도시 국가 소속 IOC 위원은 투표하지 못한다. 한국·독일·프랑스 2명씩이다.

여기에 데니스 오스왈드 위원은 자신이 이끄는 국제조정연맹(FISA)이 지난해 한국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 논란에 엮이면서 기권을 선언했다. 남은 건 102표. 이 중 주앙 아벨란제(95) 위원은 불참을 선언했다. 또 이집트 반정부 시위로 연금 상태인 무니르 사벳 위원과 병중인 국제양궁연맹 회장 제임스 이스턴 위원의 참석도 불투명하다. 이들은 친한파로 알려져 있어 평창엔 아쉬운 부분이다. 이 외에도 몇몇 위원이 불참할 것으로 보여 유치위원회는 투표 인원을 97~99명 정도로 보고 있다.

‘1차 1위, 2차 탈락’ 악몽 떨칠까
IOC 위원들은 6일 오전 8시45분부터 뮌헨을 시작으로 10시25분엔 안시, 낮 12시5분엔 평창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45분씩 받고 15분씩 질의응답을 한다. 오후 2시45분부터 30분간 각 후보도시를 직접 방문하고 평가한 IOC 실사단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오후 3시35분, 평창의 운명을 가를 무기명 전자 비밀투표를 진행한다. 로게 위원장이 결과를 발표하는 건 5시(한국시간 자정)로 예정돼 있다.

평창에 가장 이상적인 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해 유치를 확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1차에서 과반을 득표한 도시가 없으면 최하위를 뺀 두 후보지를 놓고 2차 투표에 들어간다. 1차에서 떨어진 후보도시 지지표를 끌어오는 게 관건이다. 평창은 지난 두 번의 도전에서 모두 1차 투표 1위를 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했고, 2차 투표에서 아깝게 역전패했다. 평창은 이번엔 2차 투표 상황도 철저히 대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28일 토고에서 열린 아프리카올림픽위원회(ANOCA) 총회에 조양호 위원장과 김연아 선수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것도 아프리카 표심 잡기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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