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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6조원대 시장, 5000만 간식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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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길거리 음식이 다양한 메뉴로 진화하고 있다. 28일 프랜차이즈 업체인 올리브 떡볶이 미아4거리점에서 판매 중인 메뉴들.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닭꼬치·쌀떡볶이·콜떡·팝콕·닭강정·컵닭. [김태성 기자]


2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번화가 주변 골목.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도로엔 10여 곳의 노점상이 영업 중이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타로점을 보거나 스타킹·강아지옷·액세서리 등을 파는 곳도 있지만 음식을 파는 곳이 훨씬 많았다.

 이곳에서 ‘대구 명물’임을 내세운 납작만두를 사 먹은 대학생 박하연(20·성남 분당구)씨는 “전문점 만두보다 입맛에 잘 맞아 일부러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 골목에선 붉은 오뎅·회오리감자(감자칩의 일종)·와플·다코야키(일본식 문어빵)·오다리구이(오징어 다리 튀김)·수제양념소시지 등 다양한 메뉴가 보행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원두커피와 생과일 주스도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수레에 “함께 일할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홍보문을 부착한 노점상도 있었다.

 메뉴가 다양해지고 프랜차이즈화를 꾀하는 등 길거리 음식(로드푸드)이 진화하고 있다. 1970년대 우동, 80년대 호떡, 90년대 순대로 대표되던 길거리 음식에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 주최로 28일 국회에서 열린 ‘로드푸드산업 지원을 위한 토론회’에서 석태문 박사(대구경북연구원 생명산업연구실장)는 “떡볶이·오뎅·튀김·붕어빵은 여전히 인기를 끌지만 새로운 맛·재료·퓨전화를 앞세운 자극적이고 서구화된 메뉴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 박사는 “시장규모 6조원으로 추정되는 노점상의 상당수가 음식업”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 의원은 “길거리 음식은 싸고 접근이 용이하며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소비 행태와 잘 맞는다”며 “한식 세계화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푸드클럽’ ‘올리버떡볶이’ ‘버무리’(잘 굳어지지 않는 떡볶이), ‘양철북’(양대창구이전문집) 등 프랜차이즈화도 활발하다. 2000년대 이후 일부 노점상이 전형적인 생계형에서 탈피해 전문성을 갖고 노점상업에 뛰어들면서 생긴 변화다. 김치·불고기를 멕시코 음식인 타코와 접목시킨 퓨전 음식은 ‘코기BBQ’라는 이름으로 미국까지 진출했다. 미국의 한인 2세들과 미국인이 함께 운영하는 이 이동식 노점은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동 위치를 알리고 손님과 가벼운 대화도 나눈다. 팔로어만 6만 명에 달한다.

 문제는 갈수록 번성하는 길거리 음식이 여전히 식품위생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회사원 김준영(32·서울 영등포구)씨는 22일 심한 설사 증세로 보였다. 지하철역 입구 노점상에서 사먹은 김밥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법 노점상이기 때문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청)와 지방자치단체는 길거리 음식을 단속·철거 대상으로만 여겨 수거 검사도 실시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길거리 음식에 대해서도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 따른 위생기준을 권장한다. 미국에선 노점상에서 단순 가열·가온 후 판매만 허용하고 있다.

 한강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고동희 교수는 “요즘 같은 날씨에 실온에 노출된 김밥·샌드위치·닭꼬치 등은 식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떡볶기·핫도그를 팔고 있는 양모씨는 “하루 15시간가량 일해 하루 순수입이 요즘은 6만원, 겨울엔 11만원 정도”라며 “손님들이 찾는 이상 단속만 할게 아니라 우리도 떳떳이 세금 내고 영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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