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레인코트검은우산...춥고 서럽던 ‘궂은비’가 낭만의 상징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4호 10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요즘은 비에 무언가 섞여 있을까 봐 마음 편하게 비를 감상하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비 오는 날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비 오는 날의 커피 향기는 얼마나 유혹적인가. 번잡스럽고 괜히 들떴던 기분이 비 오는 날에는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맑은 날에는 가동되지 않던 감성의 한 자락이 비 오는 날에만 들추어져 나오는 듯하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15> 비를 즐기는 젊은 도시적 감성의 출현

하지만 이렇게 비를 즐기는 태도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전근대시대의 민요에서 비는 풍년의 상징이었다. 익산의 민요 ‘비 타령’에서는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옥중 춘향이 임 만난 듯’ ‘비를 맞아도 나는 좋고 밥 아니 먹어도 배가 불러’라고 노래한다. 이 기막힌 환희는 농사꾼들의 노래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노래인 식민지시대의 트로트에 도달하면 비의 의미는 고통과 슬픔으로 고정화된다.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의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닯구려’라는 표현에서처럼, 이 시기 트로트 속의 비는 늘 ‘궂은비’다. 이는 트로트의 시대가 계속되는 195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1949, 호동아 작사·박시춘 작곡) 이 노래는 현인의 초기 히트곡으로, 49년의 음원을 들어보면 현인이 처음부터 그 희한한 창법으로 노래한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성악 공부를 한 적이 있는 현인의 클래시컬한 창법이 매우 신선하여 흥미롭게 듣게 되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도 비는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니와의 고통스러운 이별을 느끼게 해주는 ‘궂은비’다. 50년대 초의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도 마찬가지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 산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1950, 반야월 작사·김교성 작곡)
반야월의 섬세한 묘사가 빛나는 가사다. 남자를 보내는 여자의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어 어깨에 달라붙어 있고 그 위로 다시 모진 비가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이 시대까지만 해도 비는 춥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우산이 흔치 않았고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 게다가 집 바깥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비는 고통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태도로 비와 만나는 작품이 등장한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 갈 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패티 김<사진>의 ‘초우’, 1966, 박춘석 작사·작곡)
패티 김의 본격적인 한국 활동 시작을 알린 이 노래는 정진우 감독의 영화 ‘초우’(1966)의 주제가였다. 박춘석의 유려한 선율, 요즘 말로 ‘럭셔리’한 패티 김의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가 어우러져 당시로서는 고상이 뚝뚝 떨어지는 노래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 ‘초우’ 속 비의 의미다.

영화는 프랑스대사 집의 가정부인 문희와 자동차 정비공 신성일이 각기 대사 딸과 부잣집 아들로 행세하며 서로를 속이는 연애를 한다는 이야기. 여기에서 문희는 늘 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주인집에서 얻은 프랑스제 레인코트를 입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쉘부르의 우산’에서와 같은, 동글동글한 우산들이 오가는 도시 풍경이 화려한 미장센으로 펼쳐진다.

예쁜 우산을 쓰고 레인코트를 입고 뽐내며 다닐 수 있게 된 60년대 대도시에서는 비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파란색의 싸구려 비닐우산이나마 그리 힘들지 않게 구하는 시대, 돈만 있으면 레인코트에 검정 우산, 예쁜 장화까지 구색을 갖춰 거리에 나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비는, 쏟아지는 햇볕과 함께 멋진 도시 풍경을 만들어 주는 또 다른 요소가 된다.
이 노래보다 2년이나 일찍 발표되었으나 70년 신중현의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적으로 히트한 ‘빗속의 여인’ 역시 바로 이런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지금은 어데 있나 / 노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 다정하게 미소 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 나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애드포의 ‘빗속의 여인’, 1964, 신중현 작사·작곡)

애드포는 62년 신중현이 결성한 록그룹이다. 한국 록그룹으로서는 거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64년 첫 음반을 내는데 68년 이후 히트한 ‘커피 한 잔’ ‘빗속의 여인’ 등이 실려 있다.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어도(가사 중 ‘노란 레인코트’를 ‘빨간 레인코트’로 바꾸었다)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노래였는데 말이다.

레인코트 입은 여자가 남자와 검은 우산 속에서 속삭이며 함께 빗길을 걸어가는 이미지는 이제 비가 단순한 고통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과 헤어진 후에도 비는, 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분위기 있는 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중반의 이들 노래는, 70년대부터 쏟아져 나오는 온갖 비 노래를 예비하는 서곡 정도에 불과했다. 비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