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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 모인 CEO·전문직 미식가 창의적 요리 맛보고 사람 사귀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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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22면

1 20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갈라 디너. 이탈리아 와이너리 대표가 참석한 자리였다. 2 이날 선보인 3L 용량의 ‘제로보암’ 와인. 왼쪽은 750mL인 보통 크기의 와인이다. 3 지난해 파크하얏트 호텔은 예술가를 초청해 작품을 감상하고 식사하는 갈라 디너를 마련했다. 호텔 VIP들이 참석했다.

20일 저녁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에서 특별한 저녁 식사가 마련됐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와이너리인 프레스코발디의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 회장이 함께하는 갈라 디너였다. 일곱 가지 코스 요리가 일곱 가지 와인과 짝을 이룬 이날 저녁엔 40여 명이 참석했다. 캐비아·바닷가재·푸아그라 등 고급 식재료와 와인을 곁들인 갈라 디너의 참가비는 30만원(세금·봉사료 제외). 식사 한 끼로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금세 예약이 채워졌다.

풀코스로 즐기는 맛의 축제, 갈라 디너의 세계

이날 갈라 디너가 특별히 인기를 끈 이유는 두 가지다. 귀한 게스트와 귀한 와인이 있었던 것.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마케팅 담당자가 참석하는 와인 메이커스 디너(wine maker’s dinner)가 종종 열리지만, 유서 깊은 와이너리 대표와의 식사는 드물다. 또 이날 행사를 위해 프레스코발디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특별한 와인을 공수했다. 1.5L 용량인 매그넘(Magnum), 3L 용량인 제로보암(Jeroboam) 와인이다. “시중에서 보기 어려운 데다, 같은 와인이어도 750mL 보통 크기의 병에 담긴 와인보다 훨씬 맛이 좋다”는 것이 콘티넨탈 소믈리에 김학수 과장의 설명이다. 식사 중에 프레스코발디 회장은 와이너리의 역사를 설명했고, 새로운 와인이 나올 때마다 특징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날 모인 사람의 대부분은 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는 최고경영자(CEO)·전문직 종사자였다.

1인당 비용 20만~40만원 선
갈라 디너는 보통 저녁 식사나 만찬·정찬을 뜻한다. 2000년대 와인이 대중화되고 사람들이 음식과 와인의 매칭에 익숙해지면서 호텔가를 중심으로 갈라 디너라는 미식 트렌드가 생겨났다. 보통 정해진 주제에 따라 풀코스 식사가 준비되는데, 요즘엔 서양식뿐 아니라 일식·한식 등 다양한 요리가 선보인다. 곁들이는 술의 종류도 사케·막걸리·칵테일 등으로 다양해졌다.

셰프들은 두달 전부터 최상급 식재료를 이용해 신메뉴를 구상한다. 신라호텔 갈라 디너에 나온 ‘파슬리 퓨레, 마늘튀김의 황우럭 구이’(위)와 ‘트러플 소스의 바닷가재 테린’. 최정동 기자

지난달 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에서는 일식과 칵테일을 짝지은 갈라 디너가 열렸다.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믹솔로지스트(mixologist·칵테일 전문가)가 여덟 가지 일식 요리에 어울리는 여덟 가지 칵테일을 선보였다. 요리의 특성상 스시 카운터에서 열렸고, 참석 인원은 10명이었다. 한 참석자는 “일식 갈라 디너에는 보통 샴페인이나 사케가 나오는데, 이번은 형식의 파괴라고 할 정도로 참신했다”며 “갈라 디너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용을 지출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평소 메뉴판에서는 볼 수 없는 참신함과 창의성은 갈라 디너의 매력이다. 맛의 트렌드를 좇는 사람들이 갈라 디너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셰프들은 최소 두 달 전부터 요리와 주류를 어떻게 어울리게 할지 고심하고 메뉴를 기획한다. 식재료는 최상급을 사용하고 와인도 귀한 빈티지를 공수한다. 신라호텔 식음기획팀 하준석 과장은 “갈라 디너는 장사를 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단골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에 와인을 곁들여도 10만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20만~40만원대의 갈라 디너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갈라 디너는 참석 인원이 제한된다. 재료를 확보하는 게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빈티지 와인의 경우 수급이 쉽지 않다. 이렇게 소수의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식사이다 보니, 단골 고객들이 먼저 알고 예약하는 일이 많다. 조선호텔 안주연 계장은 “소수가 모이는 데다 와인에 취미를 갖고 있거나, 미식에 관심 있는 고객이 찾다 보니 모르는 사람끼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식사자리가 된다”며 “간혹 혼자 식사하러 오시는 분도 있는데 다른 참석자들과 어렵지 않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특별한 게스트를 초청해 색다르게 진행하는 갈라 디너도 있다. 파크하얏트 호텔은 지난해 예술가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갈라 디너를 연이어 열었다. ‘Art at the Park’라는 이름이 붙은 이벤트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 화가 곽수연, 움직이는 그림의 창시자인 패트릭 휴즈가 함께했다. 이 중 일부는 호텔 VIP 고객을 초청한 무료 식사였다. 임수연 과장은 “호텔이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며 “예술가를 만나고 최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선물로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통의 갈라 디너보다 더 프라이빗하게 치러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객 반응이 좋아 올 하반기에도 작가를 초대하는 갈라 디너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글로벌 본사에서 기획한 전 세계 파크하얏트 호텔의 갈라 디너도 예정돼 있다. 9~10월에 걸쳐 동시에 ‘Masters of Food & Wine’이란 행사가 열린다. 각 호텔이 속한 국가의 문화를 주제로 하는데, 한 번의 갈라 디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식 축제로 확장된 이벤트가 이틀에 걸쳐 열린다. 파크하얏트 호텔 서울은 막걸리 투어 등을 체험하고 막걸리가 나오는 갈라 디너를 개최할 계획이다.

호텔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열려
최근엔 호텔 외에 레스토랑에서도 갈라 디너가 종종 열린다. 과거엔 뛰어난 셰프가 있는 곳도, 소믈리에가 있는 곳도 호텔뿐이었지만 최근 최고급 수준의 레스토랑이 늘면서 역량을 갖춘 곳들이 생긴 것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는 “일선 레스토랑에서 갈라 디너를 기획할 수 있다는 건 자신감의 표시”라고 말했다. “애피타이저엔 샴페인, 육류엔 레드와인을 짝짓는다고 갈라 디너가 되는 게 아니다”며 “와인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요리를 개발하고 맛을 찾아내야 하는데, 실력이 없다면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낼 수 없다”고 했다.
엘본 더 테이블은 지난 2월 개점 1주년 기념 갈라 디너를 열었다. 단골 고객을 중심으로 약 30명이 식사를 했다. 이 레스토랑은 꽉 채우면 100명까지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최 셰프는 “식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 30명이었다”고 했다. “직원들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많은 손님을 대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1월 샴페인을 주제로 한 갈라 디너를 열었던 ‘남베101’은 최근 새로운 셰프를 영입하고 신메뉴를 준비하면서 갈라 디너도 기획 중이다. 홍보를 담당하는 김시진씨는 “보통 2~3개월에 한 번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데, 단골에게 미리 선보이고 평가받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갈라 디너는 일종의 ‘쇼케이스’ 역할도 한다. 신라호텔 나도연 주임은 “백화점에서 시즌마다 VVIP 고객을 초청해 쇼를 여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단골에게 가장 정확한 평가를 들으면서 고객 충성도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콘티넨탈이 매년 두 번 ‘고메 서밋(Gourmet Summit)’이란 이름으로 갈라 디너를 8년째 진행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29일 올해의 고메 서밋을 준비 중인 서상호 총주방장은 “고객 반응에 따라 갈라 디너의 요리가 메뉴 개편에서 포함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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