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 파워스타일]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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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호암아트홀. 앙상블 ‘디토’가 공연을 앞두고 연습 중이었다. 새로운 클래식, 쉬운 음악을 주제로 5년째 공연하고 있는 팀이다. 멤버는 매년 조금씩 바뀌지만 ‘젊고 잘생긴 남자 연주자들’을 기본 공식으로 한다.

 더운 여름날의 연습엔 격식이 없었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맨발에 반바지 차림으로 브람스 6중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중 단정한 긴 팔 셔츠에 정장을 입은 한 명이 눈에 띈다. 팀의 리더인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우리 멤버 중 제가 제일 보수적일 거예요. 가끔 공연에서 푸르고 붉은 옷을 입으라면 질색을 하죠. 옷장을 열어보면 비슷비슷한 계열의 어두운 색 옷이 가득해요.” 그는 검은 디오르 수트와 셔츠, 루이뷔통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두운 색뿐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소재가 좋았고, 몸에 꼭 맞는 느낌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2007년 마라톤을 시작하고 옷 사이즈가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땐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말랐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파리에 가야 제 사이즈가 있더라고요.” 그는 소문난 마라톤광이다. 풀코스를 다섯 번 뛰었다. 2009년 미국 LA에서 산 마라톤 시계 ①는 지난 주말 32㎞를 뛰는 바람에 방전이 됐을 지경이다. GPS와 페이스 조절 기능이 있는 시계는 마라토너 오닐의 좋은 동반자다.

‘디토’ 활동 덕에 그는 파격의 이미지를 얻었다. 영상과 함께 공연하고, TV 광고와 패션 화보를 찍고, 무엇보다 쉽고 즐겁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취향만큼은 클래시컬하다. 검은색의 묵직한 몽블랑 펜과 펜슬 ②은 연습실에서 늘 쓴다. 한국 이름 ‘용재’가 새겨져 있다. “제 펜이나 시계는 또래들 것에 비해 조금 나이 들어 보여요. 하지만 전 이제 20대가 아니고, 어려 보이고 싶지도 않아요. 어떤 스타일이 저를 잘 드러내 주는지 알고, 내면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그의 스타일과 음악은 닮았다. “날 알아달라고 떠버릴 필요는 없죠. 음악도 제가 사랑하는 만큼 확신을 가지고 표현하면 된다고 봐요.” 브랜드 로고가 보이는 것, 최신 시즌 상품을 일부러 피한다고 했다. 최근 파리에서 구입한 에르메스 메신저 백 ③역시 브랜드 로고가 전혀 없다. 잘 알려진 디자인도 아니다. 다만 가볍고 유연한 가죽이 품질을 말해준다. 그는 여기에 악보를 넣어 다닌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샌타모니카에 가면 야구 모자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이에요. 하지만 연주와 관련해 투어를 할 때는 늘 격식을 갖춰 입죠.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흐트러뜨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앙상블 ‘디토’의 파격에 과연 진심이 있는지 의심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 듯했다. 2011 디토 페스티벌은 프랑스 클래식을 주제로 다음달 3일까지 계속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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