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 ‘다윈의 정원’] 영재는 어릴 때 반짝하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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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교수님, 조원끼리 의견이 너무 달라 발표 주제조차 정하지 못하겠어요.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하죠?” 학기말에 조별 발표를 준비하던 몇몇 학생이 중재를 요청한다. 팀 과제를 할 때는 대개 무임승차를 하려는 조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기 마련인데, 이렇게 단독운행을 하려는 조원들로 넘쳐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든 조율을 해보라는 말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제 주제가 더 좋은데 다른 조원들이 이해를 잘 못해요.” 가슴이 답답해진다.

 “교수님, 이제 이과 공부는 안 하기로 했어요.” 학부에 들어와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자, 몇몇 과학고·영재고 출신들이 ‘폭탄선언’을 한다. 이유를 묻자 “과학이 이젠 너무 지겨워요. 과학 공부에 질렸어요”라고 한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과학 영재들의 삶을 진솔하게 조명한 프로그램이 방영돼 화제가 됐다. 소위 영재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황하다가 끝내 영재성을 잃는 경우도 많다는 내용이었다. 영재고 출신의 대학생 몇몇이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경쟁심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노트북을 몰래 잠가놓거나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가슴이 섬뜩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이공계 대학의 생명과학부 교수가 하소연을 한다. “우리 학부 졸업생들 중에서 같은 학부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 죄다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모양이야. 자괴감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감히 이것이 한국 과학 영재들의 슬픈 풍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과학 영재들이 어떻게 탄생하며 성장하는가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리 낯설지만도 않다. 일단 우리는 영재를 똑똑하고 남다른 ‘어린이’와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영재는 일단 어려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의 아이가 영재로 판명되길 열망하는 부모가 ‘선행학습’에 올인하게끔 부추긴다. 다른 집 아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수학 진도를 나간다는 것이 부모의 위안이요 자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재성의 핵심인 창의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더 어린 나이에 더 빨리 더 두툼한 진도를 나가려는 속도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영재 기관에 들어가려면 진도를 더 많이 나가야 해요.” 영재로 판명받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한 어린이의 말이다.

 이런 경쟁적 선행학습으로 영재를 기획하려는 교육문화와 시스템이 영재를 인재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다. 우선 선행학습에 길들여진 어린 영재들은 정작 마음껏 공부하고 토론해야 할 대학 시기에 과학적 호기심을 잃어버린다.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알아버린 탓일까? 오히려 그것보다는 주어진 문제들을 제 시간에 푸는 무의미한 반복행위에 질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나이에 이미 지쳐버린 것이다.

 무의미한 반복만이 영재를 지치게 한 것은 아니다. 어린 영재들이 ‘고민의 힘’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내가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우리 모두의 이런 보편적 고민들이 영재라고 해서 결코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할 시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라고 주문하고 있다.

 왜 어린 영재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중요한 인재로 거듭나질 못하는가? 어쩌면 대답은 간단하다. 사회의 실제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고 다층적이어서 제아무리 영재라도 혼자서는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문제 풀이에만 초점을 맞춘 영재 교육은 팀플레이가 필요한 현대 사회에 해답이 되지 못한다. 현대의 과학은 골방에 앉아 수식을 세우는 행위가 아니다. 거의 전부가 공동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팀플레이 정신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우리의 어린 영재들에게는 이 정신이 부족하다. 게다가 주어진 문제만을 빨리 푸는 훈련을 받은 영재들은 문제를 새롭게 정의해야만 하는 진짜 창의성이 너무 낯설다.

 영재는 어린이가 아니다. 일생 동안 호기심과 열정을 발전시켜 결국 꽃을 피우는 사람들에게 붙여져야 할 칭호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과학 영재들은 어린 나이에 반짝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 뉴턴은 성년이 된 후로 20년 동안이나 만유인력 개념을 갈고 닦았으며, 다윈은 50세에야 자신의 대작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동료와 끊임없이 관심사를 나누고 지식을 교류했던 사람들이었다. 왜 우리 사회는 영재를 인큐베이터에서만 키우려 하는 것일까?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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