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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내사<內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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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는 ‘G-men’이란 별칭이 있다. ‘Government Men’의 약자다. 동네 경찰이 아니라 연방정부의 요원이란 뜻이다. 1930년대에는 알 카포네 등 갱들이 판쳤다. 일반 경찰은 부패했다. FBI가 갱들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고 소탕에 나섰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란 영화로 만들어진 존 딜린저 은행강도 사건 등을 해결하면서 G-men으로 불렸다. 협박과 타협이 통하지 않는 수사관들이란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 그런 FBI의 명성은 오늘날로 이어졌다.

 FBI의 진짜 힘은 내사(內査)에서 나왔다.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1895~1972)는 29세이던 1924년부터 죽을 때까지 48년간 FBI 국장으로 재직했다. 리처드 닉슨까지 8명의 대통령이 거쳐갔지만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후버 파일’ 때문이었다. 대통령 등 정치인의 뒤를 캔 내사 자료가 그것이다. 닉슨은 “후버는 나까지 끌어안고 자폭할 사람”이라며 두려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도 FBI의 내사에 유혹을 느꼈다. 72년 ‘FBI 같은 조직을 만들라’는 당시 내무장관의 지시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가 조직됐다. 청와대 하명(下命) 사건을 전담한 팀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하면서 ‘사직동팀’으로 통했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 관한 정보를 주로 수집했다. 내사 자료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보됐다. 불법 감청·미행에다 청부 내사 의혹까지 드러나 2000년 10월 해체됐다. 28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내사 내용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내사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알아보는 수사의 전(前) 단계다. 수사기관은 범죄정보 수집 차원에서 수시로 내사를 벌인다. 인지(認知), 신문·방송 보도, 익명의 신고·제보·진정, 인터넷 글 등 모든 걸로 단초로 삼는다. 미행, 사진 촬영, 돈 흐름 추적 등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보통이다.

 내사의 개시와 종결 권한을 놓고 검찰과 경찰이 힘겨루기 중이다. 경찰의 독자적인 내사권과 검찰의 통제권이 맞선다. 내사는 정보 축적 과정이다. 정보가 많은 곳이 권력기관이 된다. 마구잡이 내사는 판옵티콘(Panopticon) 사회를 불러올 수 있다. 모든 것을 감시 받는 원형감옥의 사회는 위험하다. 누군가 나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내사권 논쟁을 잘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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