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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블랙 타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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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27면

금요일 저녁-스마트 캐주얼, 토요일 점심-재킷과 타이, 토요일 저녁- 블랙 타이, 일요일 저녁- 스마트 캐주얼.

스타일 인사이드

일주일 전 영국 런던에서 로열 살루트의 새 위스키 출시 행사가 있었다. 값비싼 세계적 한정판 술에 걸맞은 격식 있는 자리가 이어졌고, 그런 자리에는 늘 드레스 코드가 뒤따랐다.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코드 맞추기’를 연이어 하다 보니 과장하면 옷 입고, 밥 먹고, 옷 갈아입고, 또 밥 먹은 기억만 남을 지경이다.

국내에서도 파티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드레스 코드는 익숙한 말이 됐다. 송년 파티에서 ‘RED’ ‘GOLD’ 같은 드레스 코드에 맞춰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반짝이 옷을 입는 것도 더 이상 별일은 아니다. 이때 드레스 코드는 파티 참석자들이 분위기를 띄워 즐겁게 놀아보자는 무언의 약속이다. 격식보다는 재미가 우선이니까, 옷이 아니라 액세서리만으로도 충분히 드레스 코드를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의상이 의전이고 예의인 자리라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토요일 저녁식사가 그랬다. 영국·미국·러시아·중국 등에서 초대받은 손님이 ‘블랙 타이(black tie)’ 코드에 맞춰 입고 모였다. 남성은 턱시도에 보타이를 매고 여성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가진 옷 중 가장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실크 원피스를 입었다. 한국에선 가족의 결혼식에서 딱 한 번 입었던, 상당히 부담스러운 옷이다. 하지만 웬걸, 사람들 사이에 서고 보니 차려 입다 만 듯한 옷차림이 돼버렸다.

남성들은 윙 칼라(깃이 짧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셔츠를 입은 제대로 된 턱시도 차림이었고, 발끝까지 내려오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으니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kilt)를 입은 영국 남성과 치파오를 입은 중국 여성이다. 타탄 체크무늬의 주름 스커트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영국 신사와 실크 광택이 몸을 감싸는 치파오 차림의 중국 여성은 근사했다. 간신히 차려 입고도 모양이 나지 않는 입장에선, 부럽기도, 안타깝기도 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실패하지 않고 드레스 코드를 지키는 법을 확실히 알게 됐다. 특히 튀거나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잘 차려 입는 것을 남세스러워 하는 한국인은 더욱 염두에 둘 말이다.

‘It’s better to overdress than underdress.(지나치게 차려 입는 것이 간소하게 입는 것보다 낫다)’

사실 이 말은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옷 입기’의 원칙으로 종종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드레스코드에 적용해도 무방할 듯하다. 고민스럽다면 차라리 옷차림에 힘을 주는 편이 안전하다는 얘기다.
참고로 전통 의상은 최고 수준으로 격식 있는 드레스 코드인 ‘화이트 타이(white tie, 연미복에 윙칼라 셔츠와 하얀 보타이)’에 준하는 옷차림이다. 킬트와 치파오 차림은 돋보이면서 예를 다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또 기회가 생긴다면 한복도 시도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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