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약 수퍼 판매’ 논란의 중심 약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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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진수희 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도중 잠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3일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유보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왼쪽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최근 일반의약품(OTC)의 수퍼마켓 판매가 쟁점이 되고 있지만 지난 8일 열린 국회 사회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이 문제를 따진 의원은 비례대표인 한나라당 김금래 의원이 유일했다. 질의에 나선 나머지 여야 의원 10여 명이 모두 이 문제를 ‘모른 척’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 주변에선 “약사회의 파워가 세긴 세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실 대한약사회에 등록돼 있는 회원은 6만여 명이나 실제 활동하는 회원은 3만여 명 수준이다. 다른 직능단체에 비해 특별히 많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도 각 정당은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주면서 약사회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한나라당은 17대 땐 문희 전 한국여성약사회장을, 18대 국회에선 원희목 전 대한약사회장을 비례대표로 등원시켰다. 민주당 비례대표인 전혜숙 의원도 경북약사회장 출신이다. 이들의 국회 내 영향력은 상당하다.

대한 약사회장 출신
원희목 한나라 의원

 약사들이 정치권에 유달리 강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이들 대부분이 약국을 직접 운영하는 ‘개업약사’라는 점이 정치권이 약사회를 특별히 대접하게 되는 이유다.

 개업약국들이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거점화’가 돼 있는 데다 이들 약국마다 1~2명씩 있는 약사들은 하루 종일 주민들을 만나면서 지역사회에선 ‘오피니언 리더’가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약사들은 1990년대 중반 ‘한·약 분쟁’과 2000년 ‘의·약 분쟁’을 치러내면서 강한 단결력을 자랑한다. 지역구 의원들로서는 절대 적(敵)으로 돌려선 안 되는 ‘세력’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여성 약사들의 남편 중 유력 인사가 많은 것도 약사회가 센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나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부인 이윤영 여사 등이 약사 출신이다.

 한나라당 수도권의 한 의원은 “지역구 내 개업약사가 100명 정도 있는데, 이들에게 찍히면 선거전이 힘들어진다”며 “약사회가 부르면 달려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현역 의원인 진수희 장관이 올 초 지역구(성동갑) 약사회 정기모임에 참석했다 구설에 오른 일을 두고도 “약사회에서 책임당원과 지역 유지 등을 동원했기 때문에 진 장관도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간 걸로 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몇 달 전부터 지역 약사들이 조직적으로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OTC 수퍼마켓 판매에 찬성하면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오고 있다”며 “지역구에서 약사회에 혼날 걸 생각하면 어떤 의원도 쉽게 OTC 약국 외 판매 추진하라고는 말을 못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원희목(58) 의원은 “대부분의 의원이 OTC 약국 외 판매의 위험성에 대해 듣고 나면 약사회의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며 “‘모든 게 약사회의 로비 탓’이라고 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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