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뚱뚱한 게 기죽을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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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팻(Fat)
돈 쿨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소동, 376쪽, 1만7000원

그야말로 ‘살’에 대한 모든 것이다. ‘뚱뚱함’ ‘지방’에 대한 모든 것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 13명과 비만인권운동가 1명의 글을 모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왜 뚱뚱하면 비난 받고, 마르면 여신이 되는가’다. 예컨대 왜 미국의 패스트푸드점은 수퍼사이즈를 내놓아 고객을 잔뜩 배불리 먹이면서, 뚱뚱함을 죄로 몰고 가는 것일까.

미국인들은 뚱뚱함에 대한 증오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다. 다이어트와 헬스사업의 번창이다. 사모아·푸에르토리코·탄자니아 등 전통적으로 풍만한 몸을 성공·관대함·다산·부·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선호하던 곳에서도 비만을 개인적 실패로 보는 서구 시각이 뿌리내리고 있다.

뚱뚱함은 게으름, 자기관리의 실패 등과 동의어가 된다. 뚱뚱한 배트맨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영웅들도 한결같이 날씬하다.

 책은 ‘살’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살펴본다. 이상적 신체상이 사회문화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비만을 보는 사회적 시선의 차이부터 스팸·돼지비계 등 기름진 음식에 대한 관념까지를 담았다. 무엇보다 사례가 풍부하고 구체적이다.

 일례로 아프리카 나제르 여인들을 살펴보자. 뚱뚱함이 최고의 미덕인 여인들이다. 지금도 노예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는 나제르에서 여인의 뚱뚱한 몸은 힘들여 일할 필요 없는 높은 계급의 상징이다. “튼살 자국이 있는 허리”라는 노랫말도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른 상류층 여성에 대한 인식. 여성이 살찌기에 실패하면 그녀의 체질이나 병, 혹은 주술에 걸린 탓이라고 본다. 아무도 그녀를, 제 몸을 관리하지 못한 실패자로 낙인 찍지 않는다. 개인의 신체 결정권이 확대되는 근대 서구의 개인주의가, 역으로 다이어트 강박증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라는 아이러니다.

 여성의 인권이 높은 스웨덴의 10대 소녀들은 ‘지방담화’(살쪘다고 걱정하는 대화)로 또래를 사귄다. 외모에 대해 너무 만족하는 아이들은 비호감의 대상이다. 물론 여기에도 아이러니가 있다. 자신이 뚱뚱하다고 걱정하며 말하기는, 진짜 뚱뚱한 소녀들이 아니라 날씬한데도 엄살 떠는 이들의 몫이다. 진짜 뚱뚱한 소녀들은 그런 말조차 못한다. 왜냐? 살이 쪘다는 것은 죄악이니까!

 종교에서도 마른 여성을 신성시하는 전통은 오래다. 남성에 비해 처음부터 포기할 부와 권력이 없던 여성들은, 단식으로 영성을 증명하고 성녀로 추앙 받았다.

 물론 뚱뚱함이 긍정적으로 다뤄지는 영역도 있다. 힙합의 남성 래퍼 대부분은 고도비만이며, 노토리어스 빅·헤비 디 등 이름에서부터 빅사이즈임을 과시한다. 여기서 남성의 뚱뚱함은 돈과 여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초남성성’의 상징이다. 반면 여성 래퍼는 여전히 마르고 섹시할 것을 요구 받는다. 뚱보 백인 여성들이 섹스 대신 음식을 탐닉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뚱보 포르노는, 남근주의를 무너뜨릴 전복적인 텍스트라고 저자들은 평한다.

 ‘지방을 지성적으로 사고하라’는 책은 ‘지방을 마음껏 섭취하라’에 이른다. 역사에 기록된 인류 사회의 80% 가량은 통통한 여성을 선호해왔다. 이상적 신체상이 음식물의 풍부함과 연관 있다는 얘기다.

“뚱뚱하다고 반드시 건강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뚱뚱하다고 게으른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는 건강에 나쁘고 위험하다” “모든 몸이 다 훌륭하다” 심지어 “뚱뚱한 것이 섹시하다.” 비만인권운동단체들의 슬로건을 소개한 마지막 장이 결론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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