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에 남은 한국기업, 중국 하청업자로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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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 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을 상대로 사업을 해온 한국 기업과 대북 사업가들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대부분 손을 놓고 있어요.”

 중국 단둥(丹東)에서 10여 년째 식당을 운영해온 최모(54)씨는 “남북 경제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에는 1000여 명의 한국 기업인이 단둥에서 대북 사업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단둥을 떠났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에 들어가서 하던 임가공사업은 중국인 사업가들에게 거의 넘어갔고, 그나마 단둥에 남아 있는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 기업의 하청업자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중국 훈춘(琿春)에서 북한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던 박모(56)씨는 “북한 지하자원 개발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5·24 조치 이후 북한 지하자원의 한국 반입이 금지돼 투자금을 모두 날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사태까지 터지면서 남북 경협은 중단되다시피 했으나 북· 중 경제 교류는 순풍을 타고 있다. 대북 사업을 하는 중국 한족들과 조선족 기업인들은 요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훈춘에서 북한산 전복을 수입하는 조선족 한모(70)씨는 “중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원가 5위안(약 830원)짜리 전복 한 개를 10위안으로 높게 불러도 물량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수산업자들은 북한의 대남 무역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를 통해 한국과 교역할 때는 제값도 못 받고 결제도 제때 안 됐지만, 중국과 교역하면서 제값도 받고 현금 결제가 이뤄져 북· 중 교역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조동호 교수는 “남·북 경제교류가 중단되면서 북한은 북· 중 경제교류를 강화해 탈출구를 찾고 있다”며 “남북 경제교류에 어느 정도 숨통을 터주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베이징)·고수석(훈춘·허룽·옌지·단둥)·정용환(단둥·창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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