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분배 이끈 재스민 혁명은 되레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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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잠깐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시작한 인터뷰, 그는 거침이 없었다. “3D TV가 LG전자를 세계 1등으로 올려놓는 첨병이 될 겁니다.” 김기완(52·사진) LG전자 중동·아프리카지역 대표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무슨 근거냐”고 묻자 “기술이 세계 최고라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강이자 유일한 경쟁 상대는 삼성”이라면서도 “(삼성을 이길) 자신 있다”고 말하는 그, 묘하게 믿음이 갔다.

 -어떤 기술이 그렇게 대단한가.

 “LG그룹의 전자·화학·디스플레이 3개사가 뭉쳐 만들어낸 게 시네마 TV다. 유리 대신 필름을 붙였다. 화질은 액정과 비슷하고 값은 (삼성 제품보다) 훨씬 싸다. 눈이 어지럽지 않고, 밝고 선명하다. 기술표준 싸움은 이미 승부가 났다고 본다.”(※LG전자 관계자는 “5인치 기준, 약 80만~100만원 정도 경쟁 제품에 비해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전쟁과 혁명 바람에 중동이 불안하다. 큰돈을 들여 이런 마케팅을 할 때인가.

 “재스민 혁명은 되레 기회다. 왕가나 귀족에 독점됐던 중동의 부가 일반에 나눠지고 있다. 혁명을 두려워한 중동 왕가들이 너나없이 선심성 복지예산을 늘리면서다. 그만큼 대중의 구매력이 커진다는 얘기다. 곧 제2의 중동 붐이 불 거다. 1차 중동 붐이 왕가와 귀족의 돈을 노린 건설 붐이었다면, 2차 중동 붐은 대중의 구매력을 파고드는 프리미엄 (가전제품 등) 브랜드가 차지할 거다.”

 -해석이 독특하다.

 “남들 보는 대로, 보고했던 대로 해서는 압도적 1등이 될 수 없다.”

 -30대에 임원이 된 초고속 승진 비결은 뭔가.

 “신입사원 때부터 ‘최고경영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했다. 주인의식이 강했다는 얘기다. 주인의 눈으로 보면 적극적이고 창조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마케팅은 사람을 아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많이 읽고 생각하고 만나라”고 주문했다. 그가 경영·경제학보다 인문학, 특히 문사철(문학·사학·철학)을 강조하는 이유다. 스스로도 그렇게 갈고 닦았다. 그는 중동·아프리카 78개국을 관할한다. 거점은 두바이지만 일년에 며칠만 두바이에 있다. 마케팅을 위해 세계 곳곳을 훑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벌써 6년째다. 어지간한 거래처 CEO는 줄줄이 꿴다. LG 관계자는 “출장을 가도 비행시간 7~8시간 내내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며 “후배들에게 문학·사학·철학 책 각 300권씩은 읽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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