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장기이식관리센터 이정호 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6도의 체온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죽음을 선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인공호흡기를 차고 있지만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우리 사회가 생소하기만 한 뇌사를 받아들인 이유는 오직 한가지다.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환자들의 절박한 요청 때문이다.

9일부터 뇌사자 장기기증이 합법화됐다. 그러나 그동안 장기기증을 주관해온 민간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시행초기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뇌사자 장기이식을 총괄하고 있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이정호 소장을 만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복안이 있는지 알아봤다.

- 시행 초기부터 가톨릭의대 골수은행이 골수기증자 등록자료의 이관을 거부하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콩팥이식 등 살아있는 사람이 하는 기증에 대해선 현행대로 장기기증의 주선을 강행하겠다고 나서는 등 기존 민간단체의 반발이 거셉니다. 이를 해결할 묘안은 갖고 계신지요.

"사견입니다만 골수나 각막까지 기증 장기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현행 법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골수는 형태를 갖춘 장기라기보다 조직에 가깝고 각막은 뇌사자가 아닌 보통 사망자에게서도 적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등 민간단체의 반발도 이해합니다. 그동안 국가의 도움없이 장기기증사업에 힘써온 공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은 법이지요. 골수를 포함한 장기는 모두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승인을 거치도록 돼 있습니다. 뇌사자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기증도 예외는 없지요. 모두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갈등인 만큼 인내를 갖고 협조를 구한다면 잘 해결될 것으로 낙관합니다. "

- 장기이식법안이 통과된 것이 1999년 2월이므로 1년이란 기간이 있었던 셈인데요. 장기이식 대기자를 등록하기 위한 인터넷사이트가 법시행 1주일 전에야 겨우 개통돼 일선 병원들의 불만이 야기되는 등 준비소홀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뇌사판정.장기분배의 기준 마련 등 저희에겐 1년이란 기간도 결코 길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사이트가 늦게 개통된 점에 대해선 사과 드립니다. 그러나 이미 문서를 통한 자료입력을 완료한 상태이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공정한 분배입니다. 응급도나 대기시간 등 몇가지 기준이 있긴 합니다만 많은 돈을 주더라도 장기를 먼저 구하려는 수요가 있을 텐데요.

"장기분배는 전적으로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객관적 기준에 의해 이뤄집니다.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 합산이 높을수록 우선 순위가 주어지지요.

예컨대 심장의 경우 연령별로 15세 이하면 4점, 15~40세면 3점, 40~60세면 2점, 60세 이상이면 0점이며 6개월 이상 기다렸으면 2점, 3~6개월이면 1점 하는 식입니다.

주관적 개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식 대기자는 모두 익명으로 처리됨은 물론 직업이나 지위 등 신분의 고하를 묻는 입력항목은 아예 없습니다."

- 분배기준이 서로 비슷한 환자끼리 경합해 점수가 같게 나올 경우엔 누구에게 우선권을 줍니까.

"동일한 점수일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대기일수가 많을수록, 뇌사자가 있는 병원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순으로 우선권을 줍니다.

순위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결정되며 누구도 여기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일선병원에서 인터넷을 통해 저희에게 접수된 이식대기자 자료와 뇌사자의 신상에 관한 자료 일체는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로 누출되거나 공개되지 않습니다.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에서 인증한 보안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자료 누출에 철저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 그래도 입력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예를 들어 심장의 경우 환자의 응급도가 높으면 4점, 낮으면 0점으로 응급도 여부가 순위선정에 매우 중요한데 담당의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빨리 이식시키기 위해 실제보다 훨씬 위급하다고 입력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로 법적인 제재를 받습니다. 명백한 거짓입력이 아닌 경우라도 응급도 여부를 놓고 특정병원에서 의심되는 행위를 할 경우 이식기관 허가취소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 장기이식관리센터 내에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소지는 없습니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소장님 권한으로 순위조작이 가능한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제 자식에게 장기가 필요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격앙된 어조로)장기의 공정한 분배에 대해 신경을 쓰시는데 만일 그렇게 해서라도 불법으로 장기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차라리 미국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유하겠습니다. 장담컨대 우리나라에서 분배문제를 놓고 잡음이 생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 뇌사판정 과정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뇌사자가 새벽에 발생했을 때 병원마다 7~10명의 위원들이 모이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데요.

"맞습니다. 뇌사 후 서너시간만 지나도 장기가 손상돼 이식이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판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복지부에 건의 중입니다.

위원회가 빨리 소집되기 어려운 경우 우선 당직 신경과전문의의 직권으로 판정을 내리고 사후승인을 받는 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

- 장기분배를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오히려 뇌사자 장기기증이 과거보다 위축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와 달리 원하는 환자에게 이식할 수 없는 병원의 입장에선 뇌사자 가족들에게 장기기증을 설득할 동기를 상실한 셈인데요.

"그점도 우려됩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장기구득기관제도입니다. 즉 국가가 공인한 병원이나 민간단체에 대해 뇌사자 가족들을 설득해 장기기증을 유도할 수 있는 장기구득기관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분배에 대한 권한은 없지만 장기를 이식받는 수혜자가 지불하는 적출비용 중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지요."

- 현행법은 뇌사자 본인이 생전에 장기기증을 찬성해도 가족이 반대하면 못하게 돼 있습니다. 본인의 의사보다 가족의 동의를 우선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원칙적으론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본인이 사망한 뒤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며 장기이식을 강행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시신의 훼손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 부모가 뇌사에 빠질 경우 자녀 연령이 14세 이상만 되면 장기기증에 동의하도록 한 것은 문제 아닙니까. 아직 철 모를 나이인데요.

"장기기증을 독려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연령을 상향조정할 경우 뇌사자 장기수급에 지장을 초래할 것입니다."

- 뇌사자 가족이 장기기증으로 받는 금전적 혜택이 있습니까.

"2백만원의 장제비가 지급되며 여기에 임종을 지키는데 드는 일당 5만원 정도의 수고비가 전부입니다. 물론 이 비용은 수혜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를 제외한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불법입니다."

- 장기 하나당 1천만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 등 수혜자 부담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콩팥과 각막을 제외한 장기엔 보험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론 간이나 심장 등 다른 장기에도 보험혜택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 뇌사판정시 만의 하나 오판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또 소장님이 뇌사에 빠진다면 장기를 기증할 의향이 있는지요.

"뇌사는 소생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의학적으로 완벽한 죽음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훨씬 뇌사판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오판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장기기증이야말로 최대의 자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뇌사에 빠질 경우 장기기증을 이미 유언으로 남겨놓은 상태입니다."

만난 사람=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