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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여비서〉의 주인공 김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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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만든 임상수 감독은 강수연·진희경에 이어 3번째 인물(순이)에 쓸 배우를 찾고 있었다. 신선한 얼굴이 필요했던 그는 싸면서도 연기력이 괜찮은 배우가 많은 연극판에 눈을 돌렸다. 이때 평론가와 연출가,기자 등에 수소문해서 발탁한 배우가 바로 김여진(28)이었다.

김여진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순이'역을 잘 소화했다. 남자와의 성관계보다는 자위행위에 더 만족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청초한 이미지와 흠 잡을 데 없는 안정감 있는 연기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애송이 연극배우가 대중 속으로 앳된 얼굴을 내민 것이다.

이어 올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도 출연한 김여진은 이제 곰삭여온 연기력으로 안방극장까지 넘보려 한다. 13일 밤8시50분 첫선을 보이는 KBS2의 새 주간단막극 〈여비서〉(신수영·황선영 극본,황인뢰 연출)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 선배 심혜진(오유경)과 라이벌인 이지재 역이다.

"실력있고 현실적이며,원리원칙에 충실한 여자에요. 인간미가 있는 오유경과는 대조적인 인물이지요."

첫회 '전설을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으로 BK전자 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러시아 바이어가 느닺없이 들이닥치자 푸쉬킨의 시를 읊조리며 그를 감화시키는 것. 그러나 김여진은 "실생활에서는 편안하며 사려깊은 여자"라고 귀뜸한다.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한 김여진은 대학원 시험에 낙방한 후 뮤지컬 〈지하철1호선〉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연기자로 진로를 바꿨다. 연극 데뷔작은 황인뢰 연출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주연 '영채'역의 박상아가 KBS 슈퍼탤런트가 돼 갑자기 빠지자 '대타'로 기용됐는데 그게 오히려 잘됐다 싶을 정도로 숨은 재주를 발휘했다.

"얼마전에 점을 봤는데 40대에 유명해진다고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전성기를 맞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명세에 쉽게 빨려드는 신세대 중에서도 이런 '진국'이 있다니,우리에겐 행운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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