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특집] 벤처 '르네상스' 시대 개막 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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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벤처바람은 정보화시대로 일컫는 21세기를 맞으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2년여전만 해도 좋은 기술과 아디이어가 있어도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굴러야 했으나 벤처기업 바람과 주식열풍, 벤처펀드 급증 등으로 인해 이제 ''은행턱이 높거나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우선 벤처기업으로 대표되는 정보화.디지털화시대에 접하면서 인류사회에서는 이제까지 없었던 ''실리콘 칼러''(Silicon Color)가 탄생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요체인 반도체 주원료(실리콘)에서 따온 이 용어는 정보화.디지털화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18-19세기가 부르조아의 시대였고 20세기는 화이트칼러와 블루칼러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벤처열풍과 정보화.디지털화에 힘입어 새로운 실리콘 칼러 계층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화이트칼러와 블루칼러가 단순히 펜대나 굴리며 서류를 만지작거리거나 기계를 다룬 반면 실리콘칼러는 24시간 생각하고 움직이며 끊임없이 컴퓨터를 다룬다는 점에서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즉 실리콘 칼러는 감성과 직감, 정보기술로 무장한 복합형 두뇌노동자로 볼 수 있다.

이미 21세기 유망업종으로 인터넷사업 종사자와 정보.과학기술자, 벤처기업이 떠오르고 전통적으로 선호했던 신랑감으로도 벤처업체 종사자들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종을 압도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좀 더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디지털화 시대에서는 이처럼 실리콘칼러가 대거 등장하면서 과거의 직장개념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직장인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용주에게게 의지하고 충성을 다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직장인들은 더 좋은 일지라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언제든지 미련없이 고용주에게 등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제 개인이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종업원들이 고용주와 대등하거나 때로는 우월한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특히 벤처기업의 열풍으로 인해 우수한 기술과 기발한 아이디어만 갖추고 있으면 일확천금을 한손에 움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지금까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의식속에 남아있던 ''평생직장''신화는 이제 사라지게 됐다.

이미 국내에서도 건국이래 최대의 인력이동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엘리트층으로 불리우는 고위 관료출신들이 작년말부터 산업자원부와 재경부를 중심으로 무더기로 사표를 내고 벤처열풍에 뛰어들었다.

언론계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통신분야를 취재해온 기자들이 불과 2개월 남짓한 기간중에 20여명 가까이 벤처기업으로 옮겼다.
금융분야와 법조계에서도 이직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벤처행 특급열차를 타려는 움직임은 21세기형 골드러시를 방불케하고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로 버티던 대기업들도 고급인력이 대거 벤처로 빠져나가자 이를 막느라 스톡옵션제를 도입하는 등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종전까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던 학벌이나 지연같은 연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술과 아이디어 등으로 무장된 실리콘 칼러들에게는 오직 실력만 있을 뿐이다.

벤처밸리의 유혹은 성공만 한다면 봉급생활자도 수십억대에서 수백억, 수천억원의 부(富)를 거머쥘수 있는 꿈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스톡옵션으로 전임직원이 돈방석에 앉게 된 야후코리아의 경우 직원 10여명을 뽑는데 1천여명이 지원했으며 모 PC통신업체의 사원모집에는 석.박사급이 수십명씩 몰리는 현상을 빚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나 재벌직장을 선호했던 과거의 취업패턴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으며 특히 대기업들은 인재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모 재벌그룹 회장은 사석에서 ''요즘 대기업에는 3류 인재만 들어오고 있다. 대기업이 변화의 노력없이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질게 명백하다''고 실토했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갑자기 불어닥친 벤처열풍으로 인해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 경제의 주축인 제조업체가 흔들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는데다 그나마 기존 인력마저 벤처기업에 빼앗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제조업체들이 겪고 있는 몸살이 악화되면 인터넷 만능풍조→핵심인력유출→제조업경시풍조→제조업주가 저평가 →자금시장악화 →제조업 경쟁력 저하로 연결되며 이미 이같은 현상은 시장가치의 척도인 주가에서 두드러지게 목격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2006년까지 벤처기업들이 흡수할 수 있는 고용인력은 전체 10% 미만이고 나머지 90%는 여전히 제조업이 감당해야 하는 실정에서 최근 정책과 사회분위기가 벤처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벤처기업들이 기존 사업강화보다는 주식매각 등을 통해 거액을 챙기고 과거 재벌들처럼 벤처기업과는 전혀 관련없는 다른 사업에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머니게임에만 치중하는 이같은 사례를 일부 벤처기업가의 행태로 볼 수 있지만 자칫하다가는 ''엘리트의 한탕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벤처 본연의 특성인 기술개발은 도외시한채 거액을 챙기려고 하거나 자신과는 관계가없는 사업에 뛰어들 경우 ''도미노 현상''을 배제할수 없고 그 부작용과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부익부 빈익빈''현상으로 인한 사회계층간 갈등을 들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일을 하고 싶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그늘이 생기고 일각에서는 계층간 갈등으로 인해 ''신공산주의''의 등장까지 우려하고 있다.

IMF과정을 거치면서 ''80대 20''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된 20%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나머지 80%는 지배당하는 종속적 위치로 전락하는 구도가 굳어져 간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조차 정보의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있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들은 20-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주식폭등으로 수백억, 수천억원의 젊은 거부가 속속 태어나고 있다. 이들은 물론 노력한 댓가를 받은 것이고 벤처시대가 낳은 새로운 영웅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빈부와 정보화 격차의 위화감을 심화시키고 모든 가치를 돈으로 재는 황금만능주의를 확산시킬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국내에서 새롭게 뿌리내리는 벤처업계의 경우 큰 돈을 벌었을 경우 적절한 수준과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선진국 문화를 다소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대표적 벤처기업가들이 사회에 그늘진 소외층을 위한 돕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고 나선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

벤처기업은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발전의 한 축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같은 역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새로운 기업문화를 생성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벤처기업은 매출이나 수출액으로만 잴수 없는 혁명적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여파 또한 엄청날수 밖에 없다.

앞으로 벤처기업에게 거는 기대는 좁은 국내시장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전세계 시장에서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내실있게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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