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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22) 춤추는 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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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국립발레단 후원회 회원들이 1994년 9월 ‘해적’ 공연에서 단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왼쪽부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김혜식 국립발레단장, 윤병철 하나은행장(직책은 당시 기준).


“국립발레단(단장 김혜식)은 오는 9~14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해적’을 국내 최초로 전막(3막4장) 공연한다. (중략) 특히 국립발레단 후원회(회장 윤병철 하나은행장) 회원 등 각계 인사가 우정 출연하는 것도 이 공연의 화젯거리. 윤병철 하나은행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김재기 주택은행장, 박종웅 의원(민자당), 오세훈 변호사 등이 제1막 2장의 노예시장 장면에 출연, 노예상인 역을 맡아 간단한 마임 동작을 하루씩 선보인다.”

 중앙일보 1994년 9월 4일 문화면 기사 내용이다. 이 공연 덕분에 나는 ‘춤추는 은행장’이란 타이틀을 달게 됐다.

 발레와의 인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시작됐다. 농업은행 동기인 김주익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부인 김혜식씨는 저명한 발레리나였다. 한번은 김혜식씨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해외에서 명성을 쌓은 당신이 한국에서 후진을 양성한다면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겠소”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해인 1992년 말 김혜식씨가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추대돼 귀국했다. 나는 김 단장을 돕기 위해 국립발레단 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앞장을 섰다.

 처음엔 문화부 실무진의 반대에 부딪혔다. “국립발레단은 말 그대로 나라 건데 민간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이수정 장관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영국도 국립예술단 민간후원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후원회를 결성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흔쾌히 승낙했다.

 여러 방면으로 후원자를 물색한 끝에 93년 2월 마침내 후원회를 출범시켰다. 나는 후원회 결성에 금융계를 끌어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이다, 공금 유용 혐의를 받은 모 은행 지점장의 자살 사건이다 해서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문화계를 후원함으로써 은행의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나의 이런 설명에 이상철 국민은행장, 이용성 중소기업은행장, 홍재형 외환은행장, 김재기 주택은행장이 후원회에 참여했다. 후원금은 발레단원의 국제적 감각과 기량을 높이는 일에 주로 쓰였다.

 정기공연 ‘해적’에 출연한 것도 후원의 한 방식이었다. “선진국에선 돈뿐만 아니라 후원회원이 배역을 맡아 출연하는 것으로 후원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김혜식 단장이 출연 얘기를 꺼내기에, 농담 삼아 “그럼 엑스트라 일당도 절약할 겸 우리가 출연자로 후원하지요”라고 한 게 현실이 됐다. 김 단장의 끈질긴 요청에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먼저 출연 약속을 해버려 후원회장인 내가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알고 보니 강 회장은 학창시절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발레동작을 배운 경험이 있었다.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 진땀을 뺐지만, 덕분에 공연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발레보다 더 오래전부터 관심 가진 예술 분야는 미술이었다. 한국투자금융 사장으로 있을 때 이응노 화백의 100호 크기 그림을 4000만원을 주고 샀더니 노조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직원들의 해외연수나 시키는 게 낫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얼마 뒤 이 화백이 작고했는데 하루아침에 그림값이 1억원으로 뛰었다. 그때서야 직원들도 “그림에 투자하는 것도 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깨달았다.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전환한 뒤에도 예산안에 자연스레 그림 구입비 항목을 따로 넣었다. 92년 예산안에 1억3000만원을 그림 구입 예산으로 떡 하니 올렸더니, 사외이사이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걱정스러워했다. “윤 행장, 이제 막 은행을 만들어서 제대로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림부터 산다는 거요.”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은행은 대출 채권 말고는 자산이 없지 않습니까.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건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자산도 늘리는 일입니다. 선진국 금융회사에 비하면 이건 최소한의 금액이지요.”

 국립발레단 후원활동에 대한 소문이 나다 보니, 이런저런 인연으로 본격적인 메세나 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 이민섭 문화체육부 장관이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고 나도 부회장으로 참여하게 됐다.

 기업도 사회 시민의 일원이다. 기업이 어느 정도 커지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갚아야 한다. 은행이 사회 시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생각한 게 문화사업이었다. 문화는 물질을 싣고 가는 수레와 같아서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려면 수레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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