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달라진 프로축구 승부조작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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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로축구 선수 2명이 각각 1억원 이상의 돈을 받고 프로축구 경기에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축구계가 충격을 빠졌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축구계에는 일부 현역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하거나, 불법 베팅 사이트에 가입해 거액을 베팅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승부조작은 이변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다. 요즘의 승부조작은 강한 팀이 약한 팀을 확실하게 이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연승 중인 강팀 A와 연패 중인 B팀이 A팀의 홈에서 경기한다고 가정하자. A팀 승리에는 상당히 낮은 배당률이 책정된다. 결과를 맞혀도 수익률이 낮다. 하지만 거액을 걸면 문제가 다르다. 합법적인 스포츠 토토에서는 1인당 베팅 한도가 1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불법 사설 토토의 경우 최대 수십억원대까지 베팅이 가능하다. 승부가 확실한 경기를 잡아 ‘몰빵’을 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종전에는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기게 승부조작을 했다. 배당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강팀 선수를 많이 매수해야 한다. 이게 쉽지 않았다. 승부조작이 드러날 위험도 컸다. 그래서 최근의 승부조작은 강팀이 약팀을 분명히 이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승부조작은 선수와 브로커가 합작한다. 축구경기의 경우 약팀의 골키퍼나 수비수는 강팀과 경기할 때 수비를 느슨하게 해 실점을 한다. 공격수는 둔한 움직임으로 골 찬스를 놓친다. 소속팀의 경기력이 약하기 때문에 거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 브로커는 대포폰으로 매수를 하려는 선수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 “이번 경기에서 (수비수에게) 골을 허용하면, (공격수에게) 골을 넣지 않으면 수천만원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은퇴 선수나 실업축구 선수가 브로커로 개입하기도 한다.

 베팅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한 번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이 넘는 돈을 베팅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축구 선수는 “지난 시즌 낯선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가 ‘사설 사이트에 베팅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쌈짓돈을 투자하면 몇 배로 불려 돌려주겠다고 유혹했다”고 덧붙였다. 베팅은 대포통장을 통해 이뤄진다. 브로커는 일부 선수들에게 접근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승부조작에 가담할 것을 유도한다.

 스포츠 현장의 승부조작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8년에는 아마추어 축구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가 구속되고 해당 팀인 서울 파발 FC가 해체됐다.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을 안 소속팀 감독의 고발로 선수 1명이 구속되고 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2009년 12월 초에는 e스포츠의 인기 프로게이머 마모(24)씨가 브로커 정모씨와 공모해 프로게이머 진모씨를 매수하는 등 여러 차례 승부를 조작하다가 검거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프로축구계는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해왔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말과 올해 등 2차례에 걸쳐 스포츠토토와 연계, 연맹 등록 선수들을 대상으로 불법 베팅 사이트의 문제점과 실태에 대해 집중 교육했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서는 ‘불법 베팅을 하다 적발될 경우 벌금 5000만원 부과와 영구 제명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K-리그 전 선수와 구단 직원들에게서 받았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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