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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모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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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우스는 오만해진 인간에게서 힘을 빼기 위해 하나이던 몸을 둘로 쪼갰다. 절단된 상처를 모아 묶어둔 곳이 배꼽이다. 등 쪽에 있던 인간의 얼굴은 배를 향하게 했다. 신의 형벌 자국인 배꼽을 보고 잊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은 지금과 같은 반쪽 모습을 갖게 됐고, 나머지 반쪽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을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정의했다.

 사랑은 깨진 도자기를 다시 맞춰보듯 하나로 원상을 회복하려는 갈망이다. 입술은 그 갈망의 전달 통로다. 연인끼리 입술을 맞대고 포개는 육체적 행위, 즉 키스는 서로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신의 분신인지를 살피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입술은 언어의 마지막 경유지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밀어(蜜語)를 쏟아내는 배출구다. 그래서 사랑은 입술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입술도 나이를 먹는다는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한국 여성의 입술은 나이가 들면서 좌우 길이는 길어지는 반면 두께는 얇아졌다. 앵두 같은 입술도 나이를 먹으면 탄력성을 잃기 마련이라고 한다. 입술 근력이 떨어지면 말이 헛돌아 실수하기 십상이다. 혀가 칼이 되고 입술은 창이 돼 사람을 해치는 설검순창(舌劍脣槍)을 조심해야 한다. 모욕(侮辱)이라는 반격에 시달릴 수 있다.

 모욕은 사람을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모욕으로 본다. 우리 형법은 ‘공연(公然)히 사람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 ‘공연히’는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모욕죄는 주로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생겼다.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적용되는 명예훼손죄와는 차이가 있다.

 어제 강용석 국회의원에 대한 재판에서 새로운 판례가 나왔다.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라는 취지의 발언이 직업 집단 전체를 가리켰지만 그 직업의 개인 명예도 모욕했다고 판단했다. ‘집단모욕’ 인정은 처음이다.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발언이 갖는 무게와 영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강 의원은 여성 아나운서들이 으레 그런 일을 겪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일반 대중에게 문제의 발언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여성 아나운서 개개인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입술을 떠난 말에 더 큰 책임을 지우는 추세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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