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장 역대 32명 중 내부 승진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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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0.

 한국마사회 역대 회장 중 외부와 내부 출신의 비율이다. 1949년 한국마사회법을 근거로 세워진 이 회사는 61년 동안 32명의 회장이 거쳐갔다. 하지만 그중 마사회 직원의 내부 승진은 한 명도 없었다. 마사회 관계자는 “직원들은 이젠 아예 회장 자리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사회뿐 아니다. 공공기관에 워낙 낙하산들이 떨어지다 보니 자체 승진해 최고경영자(CEO)가 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본지가 공공기관 중 2000년 이전에 설립된 시장형과 준시장형 공기업 16곳을 분석한 결과 11곳이 창립 이후 사내 출신 CEO를 내지 못했다. 무려 68.8%가 스스로 CEO를 만들 수 없는 ‘불임기업’인 셈이다. 나머지 다섯 곳도 별 차이가 없다. 석탄공사가 60년 동안 단 한 명, 한전이 49년간 두 명 등 1~2명에 그쳤다. 이 중 이번 정부에 임명된 기관장은 한국공항공사 한 군데밖에 없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민영화와 경쟁 환경 조성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보다 더 심하게 낙하산을 내려보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 가운데 공기업(시장형·준시장형)은 직원 수 50명 이상이고 총수입액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벌어들이는 곳이다.

 물론 낙하산이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장점도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공기업 성격상 외풍을 막아 주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며 옹호하기도 한다.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내부에는 파벌이 존재하는데 외부에서 온 CEO는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성태 연구위원도 “전문성을 우선 평가해야 한다”며 출신성분만으로 적합성을 따지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최고위층까지 올라가는 길이 봉쇄된 공기업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한 마사회 직원은 “회장이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빨리 승진하면 그만큼 빨리 쫓겨난다”며 “간부급 직원들은 인사철만 되면 승진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고 말했다.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급 직원은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국 경쟁회사 직원들을 많이 접해 본 젊은 직원들은 ‘유리천장’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이 선배들보다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정년 보장도 안 되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젊은 직원들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자꾸 나가려 한다”며 “이들에게도 최소한 경쟁할 기회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종종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연줄만 타고 오는 경우다. 한 공기업 기획파트 관계자는 “이런 사람들은 실정은 모르면서 단기 성과를 내려 조직을 흔들고 인사 태풍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최현철·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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