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길에 눈 한 점 없으니 … 얼마나 백성 괴롭혀 치웠을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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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일기 『일성록』.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24일 『일성록』 중 5권을 언론에 공개했다. [변선구 기자]


“내(予)가 이르기를, ‘군교(軍校)가 격쟁(擊錚)한 사람을 구타한 일은 지극히 놀랍다. 엄하게 곤(棍)을 치라고 분부하라’ 하였다.”

 왕의 일기인 『일성록』(日省錄·국보 153호) 정조 4년(1780년) 1월 7일자의 기록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평민들이 국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군교(오늘날의 장교)가 격쟁 하는 이를 구타하자 엄벌을 명한 것이다. 같은 날 『일성록』엔 이런 기록도 있다.

 “어제 눈을 치우는 일로 백성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하교한 바가 있었는데, 오늘 지나는 도로에 눈이 한 점도 없는 것을 보니 폐단이 적지 않았음을 상상할 수 있다.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나 이번만은 십분 참작하여 처벌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깊이 유념해서 거행하라.”

 정조는 자신의 행차를 앞두고 눈을 과하게 치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 관원들을 나무란 것이다. 『일성록』은 조선후기 국왕의 동정 및 국정의 제반 운영 사항을 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자료다. 승정원 일기나 조선왕조실록은 국왕을 3인칭으로 표현하지만 『일성록』은 왕을 1인칭인 ‘여(予·나)’로 기록하고 있다.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규장각 관원에게 명해 매일 일기를 작성한 다음 5일마다 국왕의 결재를 받게 했다. 정조의 개인 일기였던 『일성록』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식 국정 일기로 전환됐다. 격쟁·민란 등 당시 백성들의 정치·생활사, 서구 과학기술과 문물이 전파되던 양상 등이 잘 담겨 있다. 한 질만 편찬된 유일·필사본으로 총 2329책이 전량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다. 강문식 학예연구사는 “국왕이 주체가 돼 날마다 반성한다는 뜻에서 적어 내려간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성록』과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24일(현지시간) 열린 유네스코 제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에서 한국이 신청한 두 건의 유산이 등재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훈민정음·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직제심체요절(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조선왕조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동의보감에 이어 총 9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은 아시아 최다 기록유산 보유국 자리도 지키게 됐다.

 ‘5·18 민주화운동기록물’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 운동 및 이후 벌어진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문건·사진·영상·증언 등의 자료를 포괄한다. 5·18기념재단·국가기록원·육군본부·국회도서관과 미 국무부에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화에 큰 전기가 됐고, 80년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이경희·정원엽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세계기록유산은 유물이 타국에 소장돼 있어도 신청할 수 있음.) ▶조선왕조의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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