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축구대표 선발권’ 싸울 일인가, 머리 맞댈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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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력
스포츠부문 기자

23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조광래 대표팀 감독이 대표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기사 송고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조 감독이 품에서 A4 크기의 종이에 쓴 메모를 꺼냈다. 그는 ‘대표선수 선발 권한을 침해하지 말라’며 이회택 기술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회택 위원장은 6시간 뒤 파주NFC(국가대표팀트레닝센터)에서 “기술위원회도 선수 선발 권한이 있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기술위원회는 (중략)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기술분석 등을 통한 축구의 기술 발전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는 대한축구협회 정관을 꺼내 보였다.

 기자는 오전과 오후에 벌어진 상황 앞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밖에 안 되나’ 싶어서다. 축구협회는 축구 전문가 집단이자 한국 축구의 얼굴이다.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장은 그중에서도 최고 전문가다. 하지만 대표선수 선발 권한을 놓고 벌이는 실속 없는 기 싸움에서 전문성과 품위를 보기 어렵다. ‘기술적인 접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24일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잘한 일이다. 조 감독이나 이 위원장도 ‘확전’은 피하는 눈치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다. 두 사람이 문제를 ‘대표선수 선발 권한’에 대한 해석 차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정확한 해석’보다 ‘현명한 운영’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협회는 선수 선발 규정을 현실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규정도 해석의 여지는 남기게 마련이다. 중요한 일은 대표팀 경기력의 극대화라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협조할지 고민하는 일이다.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장은 권력 다툼의 상대가 아니라 협조자여야 한다.

 세계적인 추세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감독이 선수 선발 전권을 가진다’는 쪽이다. 유럽 축구 중계를 보면 선수를 관찰하러 나온 각국 대표팀 감독의 모습이 자주 비친다. 그들은 무한책임을 진다. 성적이 나쁘면 해임이다. 이 때문에 감독에게 선수 선발권을 주고 기술위원회는 견제·협력하는 틀이 일반적이다.

김종력 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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