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김중수 한은 총재의 자기 모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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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한은도 최소한의 정보를 가져야 한다.”(18일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

 “중앙은행이 단독조사권을 갖지 못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캐나다 등 3국뿐.”(13일 통화정책방향 간담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감독의 난맥상이 샅샅이 드러난 게 계기다. 감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한은이 검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게 김 총재 주장의 요지다.

 옳은 말이다. 고인 물은 썩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이 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금감원의 통합 감독권을 인정하더라도 시스템 위기가 발생할 조짐이 있을 땐 중앙은행인 한은에도 검사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은 측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걱정해야 하는 당국과 달리 중앙은행은 금융회사의 문제가 드러나도 감출 이유가 없다”며 분위기를 띄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는 ‘정치와 정책에 종속된 검사와 감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큰 교훈을 남겼다. 금감원의 감독권이 무력화되거나, 심지어 오용되기까지 했던 것은 정책이나 정치적 고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건의한 금융당국에 청와대가 “공적자금의 기역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거나 G20 정상회의 분위기를 해쳐선 안 된다는 암묵적 지침이 금감원의 손발을 묶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

 김 총재의 주장이 자기모순이라는 지적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김 총재는 "금리정책도 거시정책의 틀 안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대통령에게 주례 보고하는 ‘VIP브리프’를 만들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한 명이 1년 넘게 공석인데도 ‘별문제 없다’는 식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경력이 겹치면서 ‘한은의 정치적 독립이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모든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검사와 감독은 정치와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살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정책이 실패하지 않고 정치가 오판하지 않는다. 김 총재가 검사권 요구에 앞서 한은 독립성 훼손에 대한 각계의 우려부터 먼저 풀어줘야 하는 이유다.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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