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에 보물 ‘월인석보’ 출두 왜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대검 중수부는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중수부 조사실에서 부산저축은행 김민영 대표가 소장하던 월인석보 등 보물 18점과 고서화 950점을 공개했다. [김도훈 기자]


조선시대에 편찬된 월인석보(月印釋譜·권 9·10) 등 국가 지정 문화재 18점이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불법 대출 및 부정 인출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사무실 앞에서다.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직후 한글의 초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두 권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월인석보와 함께 정약용 선생 필적이 담긴 하피첩(霞皮帖·1810년 전라도 강진 유배 때 아내 치마를 잘라 여기에 글씨를 쓴 서첩), 조선 세종 때 판각한 6개 불교경전 묶음집인 ‘육경합부’, 불교 관련 서적인 해동조계암화상잡저·지장보살본원경·묘법연화경삼매참법 권상(券上) 등도 모습을 나타냈다.

 어찌된 사연일까.

 대검 중수부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보물 18점과 고서화 950점 등 1000여 점은 모두 김민영(61·구속 기소) 부산저축은행 대표가 소유했던 것들이다. 최근 5조원대 부실 대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대표는 이 문화재들을 3월 22일 사업가 심모씨에게 10억원에 팔았다. 보물 18건을 단돈 10억원에 매매했다는 건 이상한 거래다.

 특히 매매시점이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한 3월 15일과 김씨가 구속된 4월 14일 사이다. 재산 은닉을 위한 위장 매매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대목이다. 검찰이 보물 등에 대한 소재 파악에 나서자 김 대표가 움직였다. 그는 심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10억원을 그대로 돌려준 뒤 보물과 고서화를 되돌려 받았다. 이어 중수부에 실물과 목록 일체를 제출했다.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손해배상채무의 담보로 부산저축은행과 예금보험공사에 제출해 달라”고 밝히면서다.

 검찰은 보물과 고서화 등 1000여 점을 곧 예금보험공사에 인계키로 했다. 우병우 수사기획관은 “김 대표가 수십 년 전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점 등에 비춰 그가 갖고 있던 문화재 전부가 범죄로 얻은 수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문화재청과 협의해 예보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예보는 김 대표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 승소가 확정되면 보물과 고서화를 공매 처분해 손해배상금으로 환수할 방침이다. 공매 과정에서 이들 문화재의 시가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글=임현주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월인석보=조선 세조 5년(1459)에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라는 뜻. 훈민정음 창제 이후 처음 나온 불경언해서(佛經諺解書)로서 한글 연구의 귀중한 문헌이다. 1983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