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축산물 두렵지 않다” 친환경 방패 든 두 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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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오금열씨(左), 최민영씨(右)

낙농 농가가 유기농 목장으로 전환하려면 젖소 1마리당 330㎡의 땅이 필요하다. 소에게 먹일 풀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것도 3년간 농약을 치지 않은 땅이어야 한다. 100마리를 키운다고 하면 9만9000㎡의 땅이 필요하다. 3년간 사실상 놀리는 땅을 빌리는 데만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가량이 든다.

 전북 고창군에서 젖소 100마리를 키우는 오금열(56)씨가 유기농 목장으로 전환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 역시 비용이었다. 땅 임대료뿐이 아니다. 유기농 사료를 먹이는 것도 돈이다. 비용은 느는데 정작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줄어든다. 먹는 게 바뀌기 때문이다. 젖소가 새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죽어나가기도 한다. 실제로 2005년 매일유업이 유기농 유제품 브랜드인 상하목장을 출시하며 고창군에서 유기농 목장을 모집할 때 40여 농가가 몰렸지만 정작 살아남은 건 12농가뿐이었다.

 “저로선 위험이 큰 투자였어요.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더라고요. 시장 개방하면 축산·낙농 농가는 타격을 입을 게 뻔하잖아요. 그때 결심했죠.”

 사실 오씨는 6년 전부터 제초제를 쓰지 않고 우렁이를 논에 풀어 쌀을 재배해 왔다. 일명 우렁이농법이다. 이후 쌀 생산량은 줄었지만 소득은 50%가량 늘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매년 오씨에게 쌀을 대먹는 가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오씨는 “깨끗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테니 친환경 유기농으로 승부를 걸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3년 준비 끝에 지난해 4월부터 유기농 우유를 생산해 매일유업에 100% 납품하고 있다. 소 1마리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34㎏에서 29㎏으로 줄었지만, L당 830원 받던 우유값은 1250원으로 높아졌다. 소득도 5~6%가량 늘었다. 그는 “젖소들이 완전히 체질을 개선하는 데 2~3년이 걸린다. 그때 즈음이면 우유 생산량이 다시 늘어 소득도 20~30% 늘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시에서 닭 7만5000마리를 키우는 최민영(55)씨는 2006년부터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 법이 정한 휴약기의 2배 기간을 지켜 투약하면 무항생축산물 인증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5년째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똑같은 제품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부분이 특출나게 뛰어나야죠.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게 제가 키운 닭의 경쟁력입니다.”

 대신 축사 환기시설을 2배로 증강했다. 닭이 걸리는 병 대부분이 호흡기 질환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 보통 닭 농가에서는 축사 밖의 공기를 넣어주는 양압식 시설이나 축사 안의 공기를 빼주는 음압식 시설 중 하나를 설치하지만 최씨의 축사 3개 동에는 이 두 시설이 모두 설치돼 있다.

 축사당 사육 마릿수도 줄였다. 동당 1300㎡ 규모인 최씨의 축사에선 8만2000마리까지 키워도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씨는 7만5000마리를 넘기지 않는다. 닭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최씨 농가에서도 닭이 300~400마리씩 죽어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최씨가 닭을 납품하는 하림에서조차 “너무 고생하지 말고 규정에 맞게 항생제를 쓰라”고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최씨는 단호하다. “얼마 전에 한·EU FTA가 비준됐잖아요. 시장 개방은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같은 농가가 살아남을 길은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키워 제값 받고 파는 것뿐입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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