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서 휘발유 뽑더니 … 정유사들 수출 기업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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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국내 정유사들이 수출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의 수출 비중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다. 17일 올 1분기 실적 발표를 한 GS칼텍스의 경우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59%(6조8250억원)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출 비중은 2001년(22%)에 비해 2.7배로 늘었다. 다른 정유사도 비슷하다. SK 이노베이션의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은 67%로 사상 최대였다. 에쓰오일은 59%, 현대오일뱅크는 38%였다.

 석유제품 수출이 이렇게 늘어난 배경에는 ‘정제 고도화 시설’(중질유 분해시설)이 있다. 원유를 1차 정제할 때 나오는 벙커C유나 아스팔트와 같은 중질유를 다시 휘발유·경유로 만드는 장치다. 싸구려 기름을 비싼 기름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에 ‘지상 유전’ 또는 ‘인공 유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2000년대 들어 고도화 시설을 갖추는 데 많은 투자를 했다. 정유사 중 고도화 비율이 가장 높은 GS칼텍스의 경우 이 설비를 위해 약 6조원을 썼을 정도다. 이 고도화 시설을 통해 휘발유·경유 생산량이 늘면서 수출량도 덩달아 늘어났다.

 지난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도 있다. 지진 피해를 본 일본의 정유공장 몇 곳이 가동을 멈추자 일본은 석유제품을 수입할 곳을 찾았다. 일본은 휘발유에 포함되는 황 함유량이 10ppm 이하(미국은 30ppm 이하)여야 하는 등 석유제품 환경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환경 기준이 깐깐한 우리나라 제품을 많이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덕에 석유제품은 올 1분기 수출 3대 품목에 드는 영광을 안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석유제품 수출액은 106억9600만 달러로 선박 및 해양구조물(166억3000만 달러), 반도체(122억1600만 달러)에 이어 3위다. 70만7700여 대를 수출한 자동차(97억5000만 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대한석유협회 주정빈 부장은 “현대오일뱅크가 두 번째 고도화 시설을 시험 가동하고 있고, GS칼텍스가 네 번째 정제시설을 추가로 짓고 있어 앞으로 석유제품 수출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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