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묘비에 새긴 사연들 보니 ‘5·18의 속 얘기’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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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교수가 5·18 당시 선친이 썼던 쪽지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뒤로 선친의 영정이 보인다. [프리랜서 오종찬]

“여보/ 당신은 천사였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 있는 고 최미애씨(묘지번호 135)의 비문이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학생들이 데모한다며 집을 나간 교사 남편을 집 앞에서 기다리다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최씨는 임신 8개월. 살아남은 남편은 두 생명을 한꺼번에 잃고 통곡을 묘비에 새겼다.

 국립 5·18묘지엔 현재 640명이 안장돼 있다. 이들의 사연과 삶의 궤적은 묘비명에 녹아있다. 비문을 내용별로 분석해 5·18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 비문을 통해 한 세대를 넘긴 5·18을 미시사적으로 살펴보자는 취지에서다.

 그 중심에 김강(47·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있다. 그는 “31년이 지난 5·18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며 “민주화 운동이란 거대 담론 대신 소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문화적 콘텐트를 담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비문 분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버지의 5·18』이란 책 발간이 계기가 됐다. 그의 선친은 5·18 당시 구속·해직의 아픔을 겪은 고 김태진(97년 작고, 당시 62세) 전남대 교수다. 그는 군법회의에서 계엄법 위반과 소요방조 등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고 김 교수는 전남대 학생처장으로 근무하다 계엄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80년 7월 26일~10월 22일 석 달간 쪽지편지 60여 장을 아내에게 보냈다. 담뱃갑 뒷면이나 쓰고 버린 편지봉투를 이용한 쪽지 편지엔 합동수사본부의 내란음모 수사 동향, 수감된 교수와 학생의 고통, 전남대의 사태 해결 움직임 등이 빼곡하게 담겼다.

김강 교수는 2005년 선친의 편지·공소장·진술서 등을 묶어 책으로 내면서 비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비문 분석 작업은 5·18기념재단이 공모한 2011년도 논문 연구 지원 분야에 선정됐다.

광주=유지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5·18 묘지의 비문 유형

▶ 기원형 : 아버지! 못 다 이룬 꿈 천상에서 이루시길

▶ 역사화형 :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 사실기록형 : 80년 5월 21일 계엄군 총탄 맞고, 헌병대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고통…

▶ 종교순응형 :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 자기항변형 : 왜 우리는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당할 수만은 없었다

▶ 당부형 : 아들아 서러워 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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