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현실 모르는 공직채용박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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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11년 공직채용박람회가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 등 정부의 각 기관이 70여 개의 창구를 열어놓고, 홍보를 하고 있다. 3억7000만원의 세금을 들여 역사상 처음 실시한 이 행사의 첫날에는 1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정착 창구는 한산하고, 오히려 각종 게임을 하는 곳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형국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시골 장터와 같은 분위기였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공직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을 모르는 행정안전부의 탁상행정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에 대한 각종 정보는 요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이들이 이용하는 인터넷에 있는 정보는 놀랄 정도다. 현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공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현장에 달려가서 채용해야 한다는 미국식 사고 때문에 공직채용박람회를 연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봐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 외에 별것이 없는 것이다. 팸플릿 몇 개 건네받고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몇 마디 듣고 있는 젊은이들 입장에서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공직‘채용’박람회가 아니라 공직‘억제’박람회일 것이다. 관료가 철밥통 같아서, 권력을 누리는 것 같아서, 몇 년을 시험 준비해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에서 공직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시험 준비를 포기하도록 하는 행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자질도 부족하고, 공직자로서 태도도 갖춰지지 않았으면서 이런 장밋빛 공무원상 때문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직이란 나 자신의 영예나 이익보다는 국가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어느 정도는 자기희생이 필요한 자리다. 법률이 정한 규칙을 위반해서라도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외로이 싸워야 하는 자리다. 사심 없이 업무를 처리했는데도 정치적 상황 때문에 윗사람들이나 언론으로부터 비난이 쏟아지는 자리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선진국으로 우뚝 서도록 머리를 짜내어 각종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가’ 하며 한탄하는 자리다. 한 점의 실수가 용인되지 않으므로 매우 치밀하고 꼼꼼해야 한다. 정말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영수증을 챙겨야 하고, 사소한 일에 시말서·경위서를 쓰는 일이 흔히 있는 자리다.

 공무원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특히 공직관이 투철하지 못하면 유혹에 넘어가서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파악하여 정책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시켜야 하는 자리다.

 이런 현실을 아는 행안부라면 공직채용박람회를 열지 말고 각종 고시촌에 달려가서, 번지수를 잘못 찾고 시험 준비를 하는 젊은이에게 ‘공직의 실상 알리기’를 해야 했을 것이다. 취업난에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불난 집 부채질하듯이 공직박람회를 하겠다는 발상을 한 실무자들은 바로 이런 번지수 잘못 찾은 젊은이가 운 좋게 관료가 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