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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박정희 뛰어넘는 리더십 갈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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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태욱
대기자

한국 현대사에 결정적인 획을 그은 5·16이 어제로 50년을 맞았다. 반세기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평가는 간단치 않다. 훼예포폄(毁譽褒貶)의 다양한 평가는 여전하고 앞으로도 쉽게 결론이 날 것으론 보지 않는다. 누구든 알고 있지만 결국은 군사쿠데타로서의 본질적 속성과 그 후 일구어낸 경제적 성장, 그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건 또다시 거의 제3 공화국과 같이한 내 개인적 성장기의 정체성과 관계된 문제일 수도 있겠다.

 역사의 평가는 지금 누구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후세의 평가가 다수결로 내려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박정희를 정부 수립 후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은 수다한 여론조사나 그 핏줄을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는 현 상황이 여전히 현재와 이어지고 있는 머지않은 과거에 대한 현 세대의 반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거사의 방식이 군사 쿠데타였다는 문제, 잠깐 꽃 핀 민주화의 후퇴란 그로 인한 심각한 폐해를 부정할 수는 없다. 3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많은 사람이 불법체포와 구금·고문, 극형의 정신적·육체적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이제와 희미해져 그렇지 군사적 방식의 정변에 대해 두려움을 떨쳐버린 건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지나 김영삼 문민정부의 ‘하나회’ 해체란 극적인 고비를 넘고, 얼마 안 돼 벌어진 ‘알자회’ 해체로 일종의 군부 정치세력 소탕이 이뤄진 이후가 아니었나 싶다. 이젠 30대의 장성한 세대도 알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그 잠재적 위협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음을 나를 포함한 50대 이상은 경험으로 안다.

 그런 간과할 수 없는 부(負)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두 가지 평가 잣대 중 흔히 산업화와 개발연대란 말로 표현되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이후의 한국에 얼마나 큰 정(正)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상대적 판단의 결과다.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먹는 문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되기 시작한 게 박정희 시대였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현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다고, 독재라는 강압적 통치구조가 가능케 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다소의 빠르고 늦음은 있을지언정 어차피 이루어졌을 역사적 순리(順理)였다고 논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것 아니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했지만, 먹는 문제 하나만 해도 북한이 정권 수립 60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하고 있는 꿈이다.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고, 그 기반을 불과 20년 안쪽에 충실히 쌓아 지속 가능케 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국가적 차원의 빈곤 탈피를 이뤘다 했지만, 당시 방책으로 채택한 정부의 직·간접 자원 분배를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이 결국 지금의 대기업 위주 경제구조와 양극화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연원을 따지자면 일정 부분 원인(遠因)이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지금까지 원인(原因)으로 비판하는 건 온당치 않다. 외려 원조물자에 연연하던 내수의 한계를 벗어나 수출 공업화에서 활로를 찾으려 한 건 놀라운 안목이었다. 에너지의 절대량을 ‘신탄(薪炭)’으로 부르던 땔감에서 찾고, 텅스텐 같은 알량한 지하자원이 최대 수출품목으로 꼽히던 시절, 수출입국을 꿈꾸던 혜안을 지금의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수십 년 전 남겨준 유산 때문에 부작용이 생겼더라 하는 답답한 얘기가 아니라, 왜 그 후론 그런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만한 혜안을 갖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거의 내 기자생활과 궤를 같이하는 박정희 사후, 여러 정권이 들어섰고 각각 나름의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들 정치적 구호를 내걸었지만, 한 걸음 앞서 시대를 통찰하는 비전과 실행력이란 제대로 된 작품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한 치 앞 정략이 아니라 통일 대비와 복지 시스템 강화, 성장잠재력 확충이라는 복잡한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미래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더해가는 요즈음이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