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왕 대통령 “지진 딛고 강한 아이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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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마르텔리 아이티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직후 이동차량 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유명 가수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마르텔리는 취임사에서 “아이티를 새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포르토프랭스 AFP=연합뉴스]


수십년간 지속된 독재와 내전에 이어 지난해 대지진의 참화를 겪은 중남미 아이티가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아이티 가수왕 출신 미셸 마르텔리(Michel Martelly·50)는 14일(현지시간) 5년 임기 대통령에 취임했다. 전임 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마르텔리 대통령에게 파란색과 붉은색이 어울린 대통령 휘장을 전달했다. 아이티 역사에서 전·후임 대통령이 악수하며 정권 교체를 이룬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월 25만 명의 희생자를 낸 대지진 때 무너진 대통령궁 앞에서 이뤄진 취임식에서 마르텔리는 “비참에서 빠져 나가, 손을 마주잡고 아이티를 보다 강한 나라로 바꾸자”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을 비롯한 외신이 보도했다.

14일 마르텔리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경찰들이 지난해 지진으로 무너진 대통령궁 앞을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르텔리의 대통령 취임은 한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건설 노동자로 전전한 그는 한때 마약에 빠지기도 했다. 그를 재기하게 만든 건 음악이었다. 독학으로 배운 키보드로 ‘콘파스’라는 아이티 댄스뮤직을 창안해 아이티 최고의 인기가수가 됐다. 공연 도중 엉덩이를 내보이거나 기저귀를 차고 나오는 등 기행을 일삼아 ‘스위트 미키(Sweet Micky)’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그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했을 때도 정치권에선 이를 그의 기행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르텔리는 대지진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서민을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아온 기성 정치인에게 신물을 낸 젊은 세대를 파고들면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기존 정치인 유세와 달리 그는 유권자와 함께 자신의 댄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거리 유세로 서민에게 다가갔다. 지난해 11월 1차 투표에선 여당 후보 주드 셀레스틴에 이어 3위를 했다. 두 명까지만 나가는 결선 투표에서 탈락할 뻔했던 그는 여당 후보 셀레스틴이 부정선거 파문으로 사퇴하는 바람에 결선 투표에 턱걸이했다. 그러곤 3월 20일 치른 결선 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67%라는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역전극을 펼쳤다.

 그는 군대 복원을 통한 공권력 회복을 제1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이티 군대는 1995년 좌파 대통령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에 의해 해산된 바 있다. 외국인투자 유치와 서민을 위한 주택 건설도 약속했다.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그가 만든 ‘농민의 응답(RP)’ 당의 의원은 세 명뿐이다. 대선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의회는 프레발 전 대통령의 통일당이 장악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도 숙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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