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인터넷 인재스카우트 전쟁중

중앙일보

입력

렁 츠웅은 이른바 ‘잘 나가는’청년이었다. 올해 28세의 홍콩 태생인 그는 얼마 전까지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떠오르는 별로 대우받았다. 회사의 지원으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유학했으며 회사에서 가장 젊고 연봉을 많이 받는 프로젝트 리더 중 한 사람이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가 지난해 9월 사표를 던지자 주위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그것은 곧 그 동안 쌓은 경력, 두둑한 연말 보너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회사에서 대준 유학비용을 변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뒤늦게나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결심했고 넉달 뒤인 지금은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잘 나가던 길을 포기한 것은 렁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매니어들로 가득찬 홍콩에서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젊은이들은 마치 비상사태를 맞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부자나 개척자가 되겠다고 나선 그들은 기세 등등하다.

홍콩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베이징에서도 컨설팅·금융 등의 업종에서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늘고 있다. 홍콩의 보스턴 컨설팅그룹 부회장 와히드 하미드는 “가장 능력있고 똑똑한 직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위해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고 말한다.

인터넷 관련 산업의 인재 끌어오기 경쟁은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력공급 업체 ‘모간 앤드 뱅크스’의 홍콩지사장 러셀 여맨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터넷 업체들의 채용이 급격히 늘어 이 일에만 50명의 직원을 동원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정보통신 전문가뿐만 아니라 광고사·언론사·유통사 직원들이 스카우트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같은 추세가 수그러들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회사들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맨스는 “고용주들 자신이 우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등 몇몇 회사는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을 벌이며 직원들에게 회사내에서의 기회를 제공하고 보수체계를 개선해 직원들을 유인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직자들은 지금까지 받던 보수가 크게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렁의 경우도 보수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걸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유학정보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신입사원 시절의 활력을 다시 찾았다”고 말한다. 모건 스탠리에서 뛰쳐나와 렁의 동업자가 된 25세의 브리젯 첸은 “설사 이 도전에서 실패한다 해도 창업 경험은 소중히 남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인터넷사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동창 등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기존 회사의 직원유출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 자금이 풍부한 인터넷회사들은 더 이상 새로운 직원들을 고용하기 위해 달콤한 말로 유인하지 않고도 전문가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 업체에서 인재찾기를 부탁받은 헤드 헌터들까지도 인터넷 업체로 옮겨 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존 회사들의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자리를 옮긴 사람들은 “다니던 회사에서 이런저런 대책을 세웠다 하더라도 우리들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지만 몇가지 전략은 생각해 볼 만하다. 인력 공급업체인 러셀레이놀즈의 홍통 대표 하센프란츠는 회사가 전체적인 경영계획을 직원들에게 알려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회사에서 풍부한 재원 및 능력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젊은층들에게 많은 보수와 스톡 옵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켄트 베르타임(35)은 최근 ‘오길비 앤드 마더’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보다 큰 흐름속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눈앞의 위험보다는 미래의 이익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하센프란츠는 한 중국인 고객의 푸념을 전한다. “우리가 창의적이고 의욕에 찼다는 점을 높이 사 고용했던 직원들이 인테넷 사업이 붐을 이루자 먼저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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