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에 제일은행장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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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도 한국과 인연이 있었습니까.

"92, 93년께 한국 정부가 외국 금융회사들의 한국내 영업을 승인해주던 시기에 포드의 시장진출을 돕고자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몸담았던 어소시에이츠 퍼스트 캐피털은 포드 소유였거든요. 그때 한국의 금융시장이나 사업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 유력한 금융기관의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제일은행을 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거액 연봉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때문입니까.

"보수가 더 많은 건 절대 아닙니다. 아마 도전을 즐기는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전 항상 어려운 일을 선택해 성공하는데서 기쁨을 맛봤었거든요. 또 대표이사(CEO)가 되고싶은 욕심도 있었죠. 어소시에이츠 퍼스트 캐피털에서 제가 잘 해나가고있었지만 여전히 2인자일뿐이었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갑나기가 CEO인데 말이죠. 제일은행은 70년 역사와 우수한 직원, 훌륭한 영업망을 갖춘 은행입니다. "

- 제일은행이 왜 그렇게 부실해졌다고 생각합니까.

"제일은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미국의 예를 한번 보죠. 제가 3년간 산 적이 있었던 텍사스주의 경우 석유산업이 번창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저금리 대출을 마구잡이로 해줬는데, 석유산업의 몰락과 함께 그 금융기관들도 모두 망해버렸습니다. "

-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도 한국의 은행들 중엔 그런대로 잘해나간 곳들이 꽤 있는데 왜 특별히 제일은행만 심한 부실에 처했을까요.

"집중이 문제죠. 한국의 은행들 중에도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 등은 정부 정책에 따라 주택금융이나 소매금융쪽에 특화한 결과 상대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제일은행은 기업금융에 너무 많이 집중돼있었어요. 어소시에이츠 퍼스트 캐피털의 경우 소매금융.리스.카드업 등 여러 사업분야들이 골고루 균형을 이뤄야한다는 원칙을 설립이래 80년간 지켜오고있습니다. "

- 그렇다면 제일은행의 새로운 화두는 다양화입니까. 기업금융외에 어떤 사업영역을 새롭게 개척할 계획인가요.

"무게중심을 대기업 금융에서 소매금융, 중소기업금융으로 옮길 겁니다. 주택자금 대출도 더욱 늘리고 자동차 구입자금이나 교육자금 대출도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예요. 또 신용카드 사업, 리스사업까지 업무를 다양화해야죠. "

- 하지만 한국시장에서 이미 소매금융 시장은 매우 경쟁이 치열합니다. 특별한 무기를 준비한 게 있습니까.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돈을 쓸 곳이 생깁니다. 새 차를 사야하고 새로 집을 사야하죠. 내 경험으론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합리적인 응대를 해서 신뢰를 쌓는 게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전 만약 너무 많은 대출을 요구하는 고객에겐 은행 직원들이 '당신은 지금 돈을 더 빌려선 안됩니다. 이미 수입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빌려썼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라는 솔직한 충고도 해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

- 외국인 행장이 오면서 너무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지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상거래는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 아닙니까. 사실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싼 값에 조달한 자금을 너무 싼 값에 대출해주기 때문이예요. 무작정 대출만 많이 해준다고 경영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 경영자는 대출자산을 제대로 운용해 직원들 월급도 주고, 건물 임대료도 내고, 세금도 내는 등 비용을 지불하고도 이익을 남겨야 주주의 이익도 높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적절한 가격(금리)을 매겨야죠"

- 외국인 임원들이 많이 참여하던데, 기존의 한국인 임원들은 다 짐을 싸야합니까.

"당신이 막강한 축구팀을 만들려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최강의 선수들을 끌어모으고 싶겠죠? 나는 제일은행에서 최강의 선수들이 뛰도록하고싶습니다. 제일은행의 경우 정부 관리하에 오래 있다보니 사기가 침체될 대로 침체돼 있습니다. 새로운 비전과 리더쉽이 필요하단 얘기죠. 하지만 임원들중 몇몇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한국에 오기전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은 뭡니까.

"내 철학은 '금융업은 사람 장사' 라는 겁니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를 펼치면 성공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거죠. 난 직원들에게 항상 '고객이 여러분의 보스' 라고 말하곤 합니다. 고객이 월급을 주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말라는 것이죠. "

- 한국의 다른 은행장들도 그런 얘길 많이 했었지만 실천하는데는 전부 실패한 것 같은데요.

"전 언제나 현장을 찾아다닙니다. 은행 지점을 일일이 찾아가 창구를 둘러보고 고객들과 악수를 나누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점검하는 것이죠. 돌아와선 내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취합한 뒤 직원들을 불러모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방안을 마련하고 해결하라는 숙제를 내줍니다. 그리고 난 또 다시 현장으로 나가죠. 한국에서도 이 방식이 통하길 바랍니다. "

- 한국에서는 언제까지 일할 생각입니까.

"제일은행 사람들이 원할 때까지겠죠. 최소한 3년은 머물 것 같습니다. 일본에 부임할때 3년 작정으로 갔다가 17년을 살기도 했습니다. 전 하와이에서 한국 친구들이 많았고 한국 음식도 즐기기 때문에 오래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 긴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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