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치매 어머니 모시는 농부 “세상 모든 게 살아있는 경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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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31면

가정의 달이다. 온 산천이 연초록이다. 이런 색깔들은 신호를 보낸다. 파동이다. 파동은 편안함, 따뜻함을 가져다 준다. 자연이 전해주는 안온함이다.

삶과 믿음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산천에도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 옆에 자리한 시골집에 들어서자 한 농부가 반갑게 맞이한다. 5년 전 남덕유산 자락인 이곳으로 귀농해 구순의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희식씨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어렸을 때는 어려서 몰랐고 사회 생활하면서 어머니의 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됐다. 직접 모시고 살면서 세세하게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이처럼 대부분의 자식은 부모를 세심히 살펴볼 기회가 적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거의 요양기관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자연과 함께 생활하도록 이끌었다. 쑥을 캘 때, 감자와 들깨 작업할 때도 어머니와 함께였다.

“천지가 준 자연적 조건이 모든 생명체에도 어울리듯 어머니에게도 어울렸다. 어머니를 통해 책으로도 배울 수 없는 진리를 배운다.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니가 주신다.”

그는 가끔 어머니가 쏟아내는 악담과 격한 감정 등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 아들에게 아쉬움을 물고 늘어지고 되새김질했을 때도 그랬다. 볼일을 볼 때 아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문 닫고 나가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소리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다. 생명체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마음공부와 수련, 단식을 했지만 그 귀결점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나 자신도 화가 나고 힘들고 막막할 때 대상을 향해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의 환경을 녹여내지 못하는 자신을 알아차렸다.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어머니를 수용하지 못하는 도량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 적극적으로 알아차리니 나를 더 깊이 성찰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현 상태를 새겨내고 직시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오랫동안 해왔던 마음공부가 떠다니는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몸이 망가지면서도 그에게 준 가르침이다. 그는 이것을 경전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현실경전이다.

“경전을 통해 보고 들었던 것들은 내 삶 속에서 체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와 살면서 진정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이 살아있는 경전이다.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 모습을 인정했다. 끊임없이 읽을 수 있는 산 경전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산 경전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마저도 그 본질은 나를 돕는다고 보아야 한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미워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사랑한다.”

이처럼 세상은 일과 이치를 그대로 펴 놓은 산 경전이다. 공부인들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현실경전을 보아야 한다. 번거한 옛 경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현실에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을 읽을 수 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다. 사랑이요, 자비다.

밖을 나오니 마루 한쪽에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팔을 괴고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이 자유롭다.



육관응 원불교신문 편집국장. 글쓰기사진을 통해 명상과 알아차림을 전하고 있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은 음식이야기, 자연 건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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